그룹명/대전의3대하천

갑천150리4구간

느낌표!! 2006. 11. 27. 19:59

150리 물길따라 (대둔산 수락계곡)


 갑천 발원지 대둔산 낙조산장 우물지를 찾아서........


안심사~지장암~쌍바위~지장폭포~마천대~낙조대~낙조산장 우물지~석천암~허둔장군 절터~비선폭포~둔지폭포~수락폭포~선녀폭포~승전 탑~수락주차장~수락저수지~수락리~덕곡리


일자----2004년9월25일 토요일, 맑음


논산8경 중,(제1경관촉사,제2경탑정호,제3경 대둔산,제4경계백장군전적지,제5경쌍계사,제6경 개태사제7경 옥녀봉 제8경 노성산성) 제3경인 대둔산의 갑천 발원지,낙조산장 우물지를 찾아 떠납니다.대전 서부터미널에서 06시05분발 운주행 버스를 타고 완창리 안심사 입구 삼거리에 내려 트럭을 타고 안심사가 있는 안심골에 도착 안심사를 향 해 발걸음을 옮긴다.(07:40)

완창삼거리에 있는 암심사 표지석,<안심사 입구 3.6km,안심마을 2.5km >

대둔산 서남쪽 자락에 그야말로 세월의 무상함을 안겨주는 고찰 안심사,6.25전쟁 이전만 해도 웅장했던 사찰인데 전쟁당시 아군에 의해 불타 버린 후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다만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치아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부도와 안심사 사적비 만이 안심사의 규모와 역사의 흔적을 알수 있는 안심사이다.일주문을 지나 안심사를 둘러보고 지금은 밭으로 변한 안심사 사적비문 옆으로 해서 지장암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대둔산 안심사 일주문

안심사 부도전

안심사 적광전, 대웅보전은 불사 중이다.

안심사 사적비 <콩밭으로 변해 있고....>

2개의 돌탑이 입구를 만들고 바위옆으로 소박하게 자리잡고 있는 지장암,무심코 지나가려다 지장바위밑을 보니 굴인 것 같아 베낭을 벗어놓고 엎드려 들어 가니 2군데의 별천지 기도처 가 자리잡고 있다.완전히 딴세상이다.아주 먼 옛날 이곳에 살던 한 장수가 금강산과 설악산의 경치에 버금 가도록 만들고자 설악산 남쪽 벼랑에 있던 것을 이곳에다 옮겨놓은 바위를 지장바위라 한다.(08:40)

지장암과 지장바위<바위 밑으로 기어 들어가면 별천지 기도처가 있다>

지장암을 뒤로 쌍바위을 향해 올라간다.큰 바위가 엇되어져 있는 쌍바위이다.당초 지장 바위만 있었으나 이 바위만으로는 경치의 조화가 미흡 하므로 또다시 울산암 남벽의 단하나뿐인 바위마져 가져와 이곳 계곡에다 던져 놓은니 바위가 땅에 떨어지면서 두쪽으로 갈라지니 후대 사람들이 이를 일컬어 쌍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바위에 비해 전설이 더 거창하다.(09:05)

쌍바위<전설이 거창하다.>

지장폭포를 향해 올라간다.지장암 부근에 폭포가 있는줄 알았는데 한없이 올라간다.지장폭포에 도착한다. 물줄기는 비록 작지만 웅장함에 압도 당한다.정면으로 볼 수 없고,위에서만 볼 수 있음에 아쉬움이 크다.높이가 45m나 되는 장대한 폭포로 원래는 수량이 풍부하였으나 6.25사변을 격으면서 아름드리 나무들이 벌채되어 지금은 주변이 많이 메워지고 수량도 감소하여 비온뒤라야만 폭포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이 폭포 위에는 현재 집터흔적이 남아있는데 청룡이 폭포수를 조화시켜 올라간 곳이라 하여 등로라는 암자가 있었다 한다.(09:25)

지장폭포에서 바라본 안심골<45m나 되는 장대한 폭포는 위에서 간신히 볼 수 있다>

마천대로 향하며....

8부능선을 지나고 옥계천 갈림길을 지나 금남정맥 갈림길과 만나 조릿대 구간을 지나 개척탑이 우뚝서있는 마천대에 도착한다.이 개척탑은 1970년 11월에 완주군민의 정성을 모아 군청 청원을 비롯하여 많은 군민이 자재를 직접 운반하여 해발 878m위에 10m높이의 콘크리트 탑으로 건립하여 대둔산의 상징으로 등반객의 사랑을 받아오다 1989년 기존 콘크리트 탑위에 스테인레스 판으로 정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다.하늘나라에서 선인이 말을 타고 내려와서 많은 중생을 구제하고  다시 말을 타고 승천하는 곳 마천대 가슴 후련한 조망에 힘들었던 기억은 저멀리 사라지고 낙조대로 향한다.(11:05)

마천대

마천대에서 바라본 동부능선과 낙조산장

낙조대를 향하며 바라본 금강구름다리와 삼선구름다리

해질무렵 서해 수평선상으로 지는해를 볼 수 있다 하여 낙조대라 하였고 일출 일몰의 경관은 일대 장관이다.또한 신라시대 신문왕때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태고사의 위치를 정했다 하는 낙조대에 서니 대둔산에서 발원한 물줄기들이 한눈에 들어 온다. 태고사,장군약수터에서 발원한 물줄기의 행정저수지,낙조산장 우물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수락저수지에서 쉬어가는 모습이 그림같다.(11:45)

낙조대

낙조대에서 바라본 수락저수지

잠시 다리쉼을 하고 낙조산장에 도착한다.명절연휴라 산장은 닫혀있고 따뜻한 햇빛을 등지고 산장뒤로 마애불을 만나로 간다 제작연대와 제작자는 알수 없으나 바위 벽면에 불상이 양각(陽 刻)되어 있는데 조각 수법으로 보아 고려말 또는 조선초기의 작품으로 보이며 1985년 7월19일 문화재 자료 제276호로 지정되었고, 오랜 세월 풍우로 인하여 마멸되어 있으나 아직 형상이 완전하며 특히 통견의(通肩衣)는 발 부분까지 내려졌는데 그 조각 기법이 매우 훌륭한 마애불이다.

낙조산장

낙조산장 뒤에 있는<수락리 마애불>

마애불 안내판을 읽어보고 낙조산장 해우소(화장실)방향으로 자리잡고 있는 낙조산장 우물을 확인한다.고도가 높아 장군약수터나 태고사 우물과는 차이가 있으나 그래도 맑게 흐르고 있는 우물을 보니 반갑기 그지 없다.이물이 흐르고 흘러 대전의 중심부를 흐르는 갑천의 발원지 일지니 어찌 새롭게 보이지 않으리............지도에서 보면 이 곳 낙조산장 우물이 태고사와 장군약수터 보다 훨씬높다.

낙조산장 우물<갑천 발원지>

낙조산장 우물을 뒤로 돌계단을 따라 허둔장군절터에 도착한다.지금은 무너져 내린 석축만이 장군절터임을 말없이 말해주고 있다.다시 너덜길을 따라 내려와 오른쪽으로 300m 경사지를 오르면 석천암에 도착한다. 이런곳에 암자가 있다니 놀라울 정도이다.석천암 우측 절벽 가운데에 샘이 있는데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흐른단다.처사님 물자랑에 먹어보니 시원한 그 맛이란 표현할 길이 없다.

대둔산성

석천암

석천암 약수터

석천암을 내려와 선녀폭포에서 목욕을 한 선녀가 이곳으로 거슬러 올라와 물줄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비선폭포을 거쳐 군지계곡의 군지폭포,그리고 낙조산장 발원지 물,그리고 마천대 발원지 물과 합수가 되는 지점의 수락폭포에 도착한다. 백제시대에 청.장년들이 호연지기를 기르며 심신을 수련하고 애국충절의 나라사랑 정신을 함양하였던
수락폭포를 지나면서 한몸이된 물줄기는 하늘나라 선녀들이 목욕을 하며 춤을 추며 놀았던 "선녀폭포"를 만들고 내려간다.계곡의 맑은 물과 폭포를 보면서 왜 수락인지를 실감한다.(15:00)

비선폭포

군지폭포 위에 있는 폭포

수락폭포

선녀폭포

선녀폭포를 지나 승전탑으로 향한다.6년간 동족간 수없는 대둔산 전투에서  2287명의 빨치산이 죽고,1376명의 경찰이 전사했다는 쓰라린 역사의 현장을 기록한 장소는 말끔히 조성되어 있고 ,거대한 바랑산, 월성봉 만이 말없이 승전탑을 마주대 하고 있다.(15:10)

승전탑

승전탑을 내려와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처음으로 만나는 다리이름이 승전교이다.승전교 밑을 통과한 물줄기는 주차장옆을 지나고 매표소를 통과하니 물줄기는 수락리의 수락저수지로 빨려 들어간다.정신없이 내려온 물줄기는 저수지라는 이름으로 그 숨찬 발걸음을 잠시 쉬어간다.

대둔산 수락주차장과 매표소

하수락 마을 앞 400년된 느티나무 보호수와 돌 장승에는 마을이 무사 태평하고 각 가정마다 액운을 물리쳐 주기를 바라는 장승제를 지냈다는 금줄표시가 느티나무와 돌장승에 둘려쳐져 있다.

수락리 보호수 시나무

수락리 돌장승

물줄기는 수락마을을 지나 중보실 마을로 접어 들고 중보실 넘어로 상사 바위가 가물거린다. 영주사 방향의 상사바위로 발걸음을 옮긴다.발로 살짝 건드리면 굴러떠러질 것 같은 모양의 상사바위,입구에서 보는 것이 가장 절묘하고 영주사에서 내려오면서 바라보면 모양새가 또 다르다.

수락저수지 배수구를 나온 물줄기는 덕곡리를 향해 줄달음 치고

이 덕곡리에 아내와 딸을 둔 마음이 착한 농부가,농사와 약초캐는 일을 하며 틈틈이 사냥을 해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청년이 숲속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알고 보니 그 청년은 이 고을 원님 아들 이었는데 농부내외가 일을 나가면 딸이 정성을 다해 간호를 해주었다. 이런 인연으로 그 들은 잠시라도 떨어져 있지 못하는 사이가 되고,훗날 결혼을 약속하고 떠났는데 그후 원님 아들은 부모님의 반대로 한양의 양갓집 규수와 결혼하게 되어 한양으로 떠나게 되었다.그런데 그날밤 농부의 딸은 사모관대를 쓴 도령이 가마를 타고 산밑을 지나가는 꿈을 꾸었다.


날이 밝자 뒷산 바위에 올라 도련님을 기다렸다.과연 멀리서 원님 아들이 사모관대를 쓴채 말을 타고 오는 것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도련님 하고 소리치니 하늘이 온통 뿌옇게 되고 두 번 불르메 온천지가 진동을 하고 세 번째 "도련님" 하고 부르며 그만 바위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원님의 아들도 비 바람에 밀려 산 아래로 굴러 떨어져 죽고 말았다.이런 일이 있은 뒤로 이 곳에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두 개의 바위가 생겨나니,후세 사람들은 살아서 다지 못한 한이 죽어서 바위로 나타난 것이라 하여 "상사바위"라 불렀다.


상사바위

애절한 전설의 이야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영주사 쪽에서 흘러온 물줄기는 상사바위를 한번 쳐다보고 말없이 덕곡리 중보실 마을로 유유히 흐르고 있다.영주사 까지 가볼양으로 올라가다 끝이 없어 포기하고 되돌아 내려와 드디어 <태고사,장군약수터>에서 발원한 물줄기와 <낙조산장 우물지>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합수되는 덕곡리 덕실 마을에 도착하여 발걸음을 마감한다.(17:40)


덕곡교가 있는 덕곡리 마을 입구에는 "경로효친마을"제막식 이라는 플랭카드가 바람에 펄럭이고,덕곡리 승강장에서 무려 한시간이나 기다려 버스를 타고 연산에 도착 대전행 시외버스를 타고 대전 서부터미널에 도착,다시 대화동행 시내버스를 타는 것으로 오늘 하루 일정을 마감합니다.


감사합니다.

<대전서부터널,운주행 버스시간표>

06:05--07:15--09:40--12:40--17:10

<논산출발 수락리행 버스시간표>

06:10-07:00-07:50-08:50-09:40-11:00-12:30-14:10-15:30-17:20-18:40-20:05

<수락주차장 출발 논산행 버스시간표>

07:00-07:55-09:00-10:00-11:00-12:00-13:30-15:10-16:55-18:20-19:50-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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