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대전의3대하천

大田川 을 따라 (마지막 지점 三川 洞 )

느낌표!! 2007. 4. 30. 10:12

大田川 을 따라 (마지막 지점 三川 洞 )


2005년2월27일,일요일 맑음


한절골천과 대전천이 합류하는 문창동 에서 대전의 중심부를 향해 내려가는 대전천를 따라 마지막 발걸음을 시작한다.대동강물이 풀린다는 우수가 지난 대전천가로 버들강아지가 기지개를 켜는가운데 건너편으로 예전엔 새전거리(쇠전거리)있었던 곳에는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선 인동의 모습이 보인다.

대전천과 인동(예전엔 새전거리가 아파트 단지로 변해있고...)

 


새전거리(쇠전거리)-닷새마다 대전지역은 물론 인근 지역(옥천, 금산, 동면) 사람들까지 소를 몰고와 팔거나 사는 상행위가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그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음식점이나 노점이 크게 번창했던 곳으로, 3·1운동 때에는 이곳에서 수천명이 독립만세를 불렀다고도 한다.

 

예전의 회덕금융조합(懷德金融組合)자리,(구효성학원을 거쳐 지금은 나이트건물로 되있다)그 뒤쪽에는 일제(日帝)의 토지착취기관이었던 조선척식주식회사대전지점(朝鮮拓殖株式會社大田支店)이 있었다 하지만 흔적은 찾을길이 없고.........


대전천을 사이에 두고 인동 건너편으론 대흥동이다.대전 지역에서 새롭게 크게 일어나는 지역이라 하여 동산마루,테미,부처댕이를 병합하여 대흥동이 되었는데 매년 세대수는 증가하는 데도 불구하고 인구는 감소 한다고 한다.대흥동을 지나 대전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원동,중동,정동,은행동이 대전천 위로 홍명상가 중앙데파트(현 동방마트)를 사이에 두고 자리잡고 있다.

 

추억의 헌 책방거리(원동 사거리)


대전천을 사이에 두고 교통,행정,교육,문화등 대전의 역사를 이끌어 오던 대전의 중심역활을 둔산시대로 넘겨 주기는 했지만 그 저력은 아직도 남아 꿈틀거리고 있는 느낌이다.

대전의 행정중심지였던 원동 모습


원동-대전 행정의 중심지로 대전군청(大田郡廳), 대전면사무소(大田面事務所), 대전헌병대(大田憲兵隊), 대전경찰서(大田警察署), 대전우편국(大田郵便局)도 이곳에 있었으며, 일본인들의 처음 상가도 이곳에 조성하는 등 대전에서 개발이 가장 빨랐던 지역으로 대전의 이름도 이곳에서 비롯되었다 하는데 모든 것은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대전의 중심(우측 구 대전백화점,중앙 홍명상가 뒤 건물은 동방마트)

 

중앙시장 입구(지금도 명맥은 이어지고...)


지금의 효성학원 자리에는 회덕금융조합(懷德金融組合)이라고 부르던 지금의 농협과 비슷한 금융기관이 있었으며, 그 뒤쪽에는 일제(日帝)의 토지착취기관이었던 조선척식주식회사대전지점(朝鮮拓殖株式會社大田支店)이 있었다 하지만 흔적은 찾을길이 없고.........

중동의 중심 대전역(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중동-1901년 경부선 철로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한밭이라고 불리던 지역으로서, 대전천(大田川)이 범람하여 넓은 들엔 갈대밭이 무성하고, 시냇가엔 모래밭이 깔려 있던 곳이었다. 1905년 대전역이 경부선역으로 설치되면서 도시가 발달하기 시작했으며, 그 중심부가 바로 중동(中洞)이었다.중동에 자리잡고 있는 대전역은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은행동 (구 중앙데파트 현 동방마트 앞의 목척교 유래비)


은행동(銀杏洞)-옛 목척리(木尺里)에 있던 다리라 해서 목척다리라 한다.은행나무 정자가 있는 마을이라 '은행정, 으능정이'라 부른다.이 목척리와 으능정이를 합하여 은행동이 되었다.지금도 은행동 으능정이는 문화의 거리로 조성되어 청소년들의 물결이 넘쳐나는 곳으로 변하였다

은행동(으능정이 문화의 거리)


홍명상가앞 공원에는 많은 노인분들이 윷놀이 한창이고 으능정이 문화의 거리에는 청소년들이 넘쳐난다.묘한 대조를 이루는 가운데 대전천은 홍명상가와 중앙데파트(현동방마트)건물밑을 지나 말없이 삼성동과 마지막 동인 중촌동을 향해 말없이 내려간다.


대전천과 대동천이 합류하는 삼성동,대전천 넘어로 구 대전산업대 자리에는 신축아파트 공사가 한창진행중인다.

좌측 대동천,우측 대전천 건물은 보문고등학교


<중촌동>무릉(武陵)(무릉이, 무릉리(武陵里)-철길 건너 있는 곳으로 지금의 중촌주공아파트 단지로,중국 진(晋)나라 때의 도연명(陶淵明)이 지은 <도화원기>(桃花源記)에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란 말이 있다. 이 마을이 전에는 벌판으로 복숭아나무만 무성하였다는데, 복숭아꽃이 만발했던 중국의 이 무릉(武陵)을 따서 붙인 이름이라 한다.

 

중촌동 구 무릉마을 앞으론 호남선이 지나가고...


무릉천변공원(경로공원(敬老公園)-중앙고등학교 뒤편,중촌동 네거리에서 세월교 가는 천변 도로 동쪽으로 약 800m 정도로 난 공원이다.중촌동 일대에 조성된 근린공원으로 공원명을 옛지명인 무릉에서 차용하였다. 일명 경로공원이라고 하며, 공원 안에 효심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무릉천변공원(경로공원(敬老公園)-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닮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대전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어 중말이라고 부르던 중촌동(사거리) 삼순이 감자탕이라...

중촌동의 평화원앞 대전천 표지판을 지나 건너편으로 삼성동과 오정동이 눈에 들어오고 대전천변 도로 가 대전천을 따라 이어지는데 대전천이 몸살을 앓는 가장 큰 원인이 대전천변도로가 아닌가 싶다.언젠가는 자연상태의 대전천으로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그 몫이 우리세대가 아니고 우리 다음세대에 물려줘야 하는 안타가움이 든다.

마지막 대전천 표지판

 

유등천, 대전천 이 합쳐지는 삼천동


대전천도 중촌동을 마지막으로 건너편 갑천, 유등천, 대전천 등 세 냇물이 합치는 곳에 있다고 하여 삼천리라고 불리웠던 삼천동에서 마지막 그 임무를 다하고 유등천으로 흡수 되어 다시 태어나며 그 끝을 맺는다.

 

좌측 대전천,우측 유등천 중앙은 보문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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