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구곡 나들이

율원구곡((栗原九曲)을 찾아서

느낌표!! 2013. 11. 1. 08:47

율원구곡((栗原九曲)을 찾아서


 

날짜 : 2013년10월30일 수요일 맑음(안개)

코스 : 장령산휴양림-장령산-이지당-부소담악-환산-추소리

거리 : 도상거리 약21km

시간 : 약10시간



<율원9곡중 제4곡 부소담악>


금천계곡에서 금강까지 아홉곳에 시를 붙여 아름다움을 노래한 율원구곡은 조헌 선생이 지금의 이지당 근처에서 서대산의 정치적 동지인 스님을 만나기 위해 걸었던 그 길 위에 펼쳐져 있다.

 


언젠가는 꼭 답사 해 보고 싶었던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김포 사람으로서 나라을 위해 내고장 금산 전투에서 48세의 젊은 나이에 장열이 산화한 의병장,무장으로서 고뇌의 심정으로 걸었던 곳, 장령산과 환산에 올라 적의 진격로을 살피고 적을 격퇴시킬 방도에 몰두했던 그 장소가 공교롭게도 자신이 절경을 노래 했던 곳이었으니 참 역사의 아이러니라 아니 할수 없다.


구곡 거리가 워낙 멀어 여유롭게 절경을 의미 하며 걷기에는 어려운 곳이다. 더욱이 지금은 대청호로 인해 5,6.7곡이 물에 잠겨 흔적을 찾을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아침 6시가 되기전 지금은 옥천 삼양네거리가 되었지만 예전의 옥천 검문소 삼거리에 주차 하고 금천 방향 으로 향하는 차를 향해 손을 들기를 1시간 결국은 포기 하고 옥천 버스 터미널에서 6시50분에 츨발 하는  금천행 첫 버스를 타고 장령산 휴양림 입구 종점에 도착 했다. 처음 격는 일이라 참 인심이 야박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400 여년전 조헌 선생이 아름다움에 취해 걸었던 그 길 따라 오늘 한적한 장령산 휴양림 입구 에서 그 첫 발을 내딧는다.


먼저 금천 과 소옥천<서화천이라고도한다>을 거쳐 금강에 이르는 전체 절경를 노래한 서시<序詩> 부터 들어 보자


  栗原九曲 序詩


 천성노악비정령(天成老嶽비精靈): 하늘이 만든 노성산(老城山)에 정령이 숨어 있으며

 악하천류보보청(嶽下泉流步步淸): 산 아래 샘물 흘러 한결같이 맑아라

 행도율원기승처(行到栗原奇勝處): 율원의 기이하고 아름다운 곳에 도달하니

 무이수속도가성(武夷須續棹歌聲): 모름지기 무이구곡의 노 젖는 노랫소리 이어지네


송대의 주자가 무이산에 있는 36개 봉우리와 37개 암석의 사이사이로 흐르는 아홉굽이 계곡의 절경을 노래한'무이구곡'과 견줄만한 곳이다. 했으니 과연 그러 한지 내가 무이산 무이구곡의 아름다움을 보지 않았으니 알길은 없지만 그만큼 아름답다는 이야기 일 게다. 먼저 휴양림 입구에서 서대산 까지 금천이 이어지는데, 그 아름다움을 먼저 1곡라 칭 했다. 물이 없는 조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 수 없이 서대산을 오가며 접 했을 금천, 바위 사이를 잔잔히 흐르는 계곡물을 보고 있는 어느 순간 이곳이 신선의 세계로 보일때가 많았을 것이다. 그 아름다움을 어찌 잊겠는가 그래서 제1곡이라 칭하지 않았나 싶다.



<율원9곡중 제1곡 금천(錦川) 짙은 안개로 인해 장령산을 돌고 내려와 촬영한 사진이다.>


▶제1곡 금천(錦川)

 일곡창강유소선(一曲滄江有小船): 일곡이라 푸른 강에 작은 배 떠 있는데,

 발원남악작장천(發源南嶽作長川): 남쪽 산에서 발원하여 긴 강을 이루었네.

 서귀금록인귀해(西歸錦麓因歸海): 서쪽으로 금강 기슭을 돌아 바다로 흘러들어가

 벽랑응통주사연(碧浪應通洙泗烟): 푸른 물결은 응당 수사의 안개와 통하네.


옥천신문에 실린 글을 인용 하자면,금천이 서해로 흘러 들어간다는 표현을 함으로써 ‘사수’라고 표현된 공자가 도를 가르쳤던 곳과 일치시킴으로서 자신의 학문이 공자의 학문을 계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천명한 것으로 보고 있다. 라고 하는데 나에게는 작은 냇가를 <배> 떠다니는 강으로 표현한 것부터 이상의 세계,뜬구름 잡는 어려운 이야기로 들린다. 금천을 거슬러 휴양림 입구를 지나 출렁 다리에서 제2곡 장령산을 오른다.






맑고 푸른 금천을 가로 지르는 출렁 다리를 건너 면서 장령산을 오른다.

  


장령산 정상이다. 어제 비가 와 오늘 산행시 맑고 청명함을 기대 했으나 기온이 오르는 바람에 짙은 안개가 끼었다. 이곳 정상에서 왕관바위 지나 마성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바라보는 좌우 조망은 일품이다. 예전이나 지금 자연의 아름다움이 어디 가겠는가  그래서 조헌 선생도 이곳을 2곡이라 명명한 모양이다.



제3코스 길을 택했다.



<장령산 왕관바위>


이곳 에서 제2곡의 시를 음미 해 보자


▶제2곡 장현봉(장峴峰)

 이곡초요장현봉(二曲초嶢장峴峰): 이곡이라 높디높은 장현봉

 천암만학담추용(千巖萬壑淡秋容): 수많은 바위와 골짜기 가을 기운 맑아라

 서대망료인첨북(西臺望了因瞻北): 서대산을 바라보다 북쪽을 바라보니

 면상봉래취만중(緬想蓬萊翠萬重): 만 겹의 봉래산 푸른 봉우리 생각나네.


예전엔 장현봉이라 했나 보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장용산 이라고도 했는데, 어찌 되었던,한마디로 예기 하면 너무 아름다워 신선이 사는 비경에 비교 된다 하니 제2곡으로 칭 할만 하다. 여름 금강산의 다른 이름도 봉래산이니 말이다. 



북쪽의 서대산이 오늘은 짙은 안개와 구름으로 안탑갑게도 청명 하지 못하다. 이곳 왕관바위에서 금천교로 내려가 3곡 이지당 으로 향한다.



<금천과소옥천이 맞닿는 군서면사무소>

출렁 다리를 출발 장령산 3코스로 돌아 금천교로 내려와 금천 따라 군서면사무소에 도착 한다. 금천이 소옥천으로 다시 태어 나는 곳이다. 반환점 군서면사무소를 출발 삼양 사거리로 향한다.



군서면사무소 앞을 흐르는 <소옥천> 따라 삼양 사거리 까지는 1시간 15분 걸린다. 은행나무 가로수로 멋진 37번 도로를 따라 오면 된다. 3곡 방향은 대전으로 향하는 4번국도 따라 이지당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 까지 올라 간다.

 


37번 도로와 4번 도로가 만나는 삼양 사거리에는 옥천 척화비가 있다. 그 내용을 적어 본다.


<옥천 척화비>


서양 제국 세력의 침략을 경계하기 위해 고종 8년에 한양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 세운 비석중의 하나이다. 고종 3년에 프랑스 함대가 조선을 침략하자 대원군은 "서양 오랑캐의 침입에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며 그 들과 교역하면 나라가 망한다." 라고 하는 글을 반포하여 쇄국의 의지를 확실히 알렸다. 그리고 고종 8년에 미국이 통상을 요구 하며 침입하자 이들을 물리친 후 더욱 쇄국을 다지고자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워 경계토록 하였다. 비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범함에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 라고 하는 12자를 큰 글씨로 쓰고,그 옆에는 "우리의 만대 자손 들에게 경고 하노니!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운다." 라고 작은 글씨로 새겼다.



척화비에서 바라본 환산 이다. 대원군과 조헌이 한 선상에 그려 진다. 어찌 통탄 하지 않으리 임진왜란을 격고도 준비 하지 못하여 두번째 침략을 당하는 수모를 당하니 말이다. 역사의 교훈이다. 똑같은 일본에게 3번째 당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분단의 현실 정파 싸움..서로 힘을 모아 준비 해도 늦을 판에 정치를 보면 예전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으니 참 으로 안타갑기 그지 없다. 대전 으로 향하는 4번 국도 따라 올라 간다.



이지당 갈림길, 4번 도로 공사 중이다.



작업 차량에 이지당 알림판이 가려졌다.



이지당 갈림길에서



율원9곡중 제3곡 임정(林亭)<이지당>



이지당 입구 좌측 바위에 새겨진 글


‘二止堂 重峰先生遊賞之所 尤齋先生 書(이지당 중봉선생유상지소 우재선생 서) 우암 송시열 글이다.

  


이지당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인 중봉 조헌(1544∼1592)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서당이다. 처음에는 각신마을 앞에 있어서 "각신서당" 이라고 하였다. 그 후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이 고장의 영재를 모아 교육하여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송시열은 “산이 높으면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고, 큰 행실은 그칠 수 없다(高山仰止 景行行止)”라는 문구의 끝인 지(止)를따서 ‘이지당’이라 서당의 이름을 고치고 현판을 써서 걸었다.



조헌-조선 시대의 문신, 의병장. 호는 중봉. 경기도 김포 출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에서 의병을 모아 승병들과 합세하여 청주성을 수복하였으나, 금산 전투에서 700의병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1604년 선무 원종 공신 1등으로 책록되었고, 1734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율원9곡중 제3곡 임정-자연미 로는 부소담악이 으뜸이고, 인공미를 더한 아름다움은 임정이 최고다. 



▶제3곡 임정(林亭)

 삼곡임정소사선(三曲林亭小似船): 삼곡이라 숲속의 정자 배와 같이 작은데

 일린모옥자하년(一隣茅屋自何年): 띠풀집 한 채 언제부터 있었나?

 인휴조율정신양(人휴棗栗呈新釀): 사람들이 대추와 밤, 새로 담근 술 가져다주니

 노수풍류이역련(老守風流爾亦憐): 늙은 태수의 풍류 그 또한 아름다워라.



바위 위에 올라 앉아 있는 이 정자를 허공에 떠있는 듯, 배에 비유해 산수 좋고 인심 좋은 곳에서 풍류를 즐긴다. 수풀과 정자,소옥천이 멋진 3박자을 갖춘 곳으로 제3곡 으로 칭 할만 하다. 차마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3곡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4곡으로 향한다. 마을 좌측 길로 넘어 가면 대청호 오백리길 환평리 갈림길 이정표를 만난다. 4곡 창병(蒼屛)<부소담악>까지는  4 km, 십리길이다.



율원9곡중 제4곡 창병(蒼屛)<부소담악> 자연이 만들어 낸 최고의 걸작품 



▶제4곡 창병(蒼屛)

 사곡창병대석암(四曲蒼屛大石巖): 사곡이라 푸른 병풍 큰 바위인데

 암전풍엽영남삼(巖前楓葉影삼): 바위 앞에 단풍잎 그림자 짙네

 산용준수무인견(山容峻秀無人見): 산은 높고 빼어나지만 보는 사람은 없는데

 알옥명천형벽담(알玉鳴泉馨碧潭): 옥 부딪히는 소리나는 샘물 연못을 울리네.


추소리의 사랑  <노금선>

 

바람 한 자락 햇살 한줌 싸 들고 추소리 들어오는 날

하늘이 고와 눈물 난다 초록빛 햇살무늬 굽이치는 강물

중봉 조헌 선생의 율원 구곡 시가 흘러간다

여기가 부소머니 소금강 암벽 틈에 뿌리내린 소나무 자태

바람조차 숨죽이며 간다 물이랑 잔잔히 흐르는 곳

세월마저 노을에 젖어들면 추소리 산언저리 번지는이름 하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꾀꼬리처럼 울지도 못할 기찬 사랑을 가졌어라"


조헌 시인과 노금선 시인의 추소리 부소담악에 붙인 시를 비교 감상 하는 것도 괜찮은것 같다.



제4곡은 군북면 추소리 부수무니 앞 병풍바위이다. 바위가 푸른 병풍과 같은 절경을 이루고 있다고 그리고 있다. 기괴한 형상을 이루고 있는 병풍바위는 지금도 뭇사람들로부터 소금강이라고 불릴 정도로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4곡 창병<추소정>-대청호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이 사방으로 펼쳐 진다. 율원구곡의 진수를 만끽하는 순간 이다.



5,6,7곡은 환산 정상에서 설명 해야 정확하기에 황룡사옆으로 나있는 환산 등로 따라 정상으로 오른다.



제4곡 부소담악 추소정에서 좌측 오목 하게 들어간 곳이 율원9곡중 제5곡 동남곡(東南曲) 이다.


▶제5곡 동남곡(東南曲)

오곡동남곡구심(五曲東南曲口深): 오곡이라 동남쪽의 골짜기 입구 같은데

의희선려격운림(依희仙侶隔雲林): 신선의 세계와 닮아 운림 속에 떨어져 있네

임변유객형용구(林邊有客刑容구): 숲가에 나그네 몸과 얼굴은 가냘퍼도

산수고가천고심(山水高歌千古心): 산수 속에서 천고심을 큰 소리로 노래하네.


군북면 추소리 골남이를 이른다. 동남곡은 동남쪽의 골짜기로 깊숙한 신선의 세계와 닮아 있다. 많은 물고기들이 골짜기에 그득 했다 한다. 아쉽게도 7곡은 물에 잠겨 만날수 없게 되었다.



부소담악 추소정 가는길 보이는 한얀점 좌측 오목하게 들어간 곳이 율원구곡중 제6곡 석문이다.


▶제6곡 석문(石門)

육곡송삼호벽만(六曲松杉護碧灣): 육곡이라 소나무 삼나무 푸른 물굽이 감쌌는데

소소일경석위관(簫疏一逕石爲關): 쓸쓸하고 한적한 오솔길 돌이 관문을 이루었네

창애취벽고천척(蒼崖翠壁高千尺): 푸른 벼랑 비취빛 절벽 높이가 천 자인데

부앙이유객의한(俯仰夷猶客意閒): 쳐다보고 굽어보니 평온하여 오히려 나그네 마음 한가하네


군북면 추소리 이탄(배여울) 연하봉 서당골 강기슭에 있었다. 소옥천 물가에 바위가 문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석문이라고 했다. 물레방아도 있었다고 한다. 대청호로 인해 추억속의 이야기가 되었다.



정면 보이는 반도 지형 끝지점에서 좌,우측 마을을 여울 따라 바지 걷고 건너 다녔다는 곳이 율원9곡중 제 7곡 은병(隱屛) 이다.


▶제7곡 은병(隱屛)

칠곡건상도벽탄(七曲건裳渡碧灘): 칠곡이라 바지 걷고 푸른 여울 건너며

은병유곡비회간(隱屛幽谷費回看): 은병 깊은 골짜기 뒤돌아보곤 하네

인어추우림음심(人語秋雨霖음甚): 사람들 가을비가 장맛비처럼 거세다 말하지만

아애비천첨득한(我愛飛泉添得寒): 나는 날리는 샘물이 더 차가워져서 좋아라.


군북면 추소리 배여울 근처를 말하고 있다. 수직으로 선 바위 절벽이 병풍을 펼쳐 놓은 것 같다고 해서 그 풍광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장마가 지면 배타고 다녔지만 여울지면 바지걷고 건너 다녔던 추억의 장소가 물속에 잠겨 이제는 영원히 볼수 없게 되었다.



▶제8곡 환산성(環山城)

 팔곡궁림안활개(八曲穹林眼豁開): 팔곡이라 높은 숲 눈 앞이 탁 트였는데

 강만요곽수동회(岡巒寥廓水東廻): 높은 산의 고요한 성곽 물은 동쪽으로 감도네

 추원희문경운수(秋原喜問耕雲수): 가을 언덕에서 구름을 갈고 있는 노인에게 기쁘게 물으니

   위도이삼가객래(爲道二三佳客來): 둘 셋 멋진 손님이 와계신다 말하네.


환산성을 보고 돌아가는 강줄기와 강가에 펼쳐진 오밀조밀한 산세가 장관이라는 점을 노래했다. 예전에도 장관 이었다지만 지금은 호수로 둘러쌓여 아름다움이 더 해졌다. 율월9구곡중 1,2곡을 제외한 모든 곡이 한눈에 펼쳐지는 장관을 감상 할수 있는곳이 환산 이다.  



환산을 내려와 호수가에 닿았다. 9곡 삼봉은 그 마저도 대청호로 인해 연결 해서 갈수 없게 되었다. 아쉽지만 9곡 삼봉<오봉산>은 유재구 선생님 안내로 이루어진 선답기로 대신 한다.



율원9곡 답사전 옥천 향토사 연구회 자문위원 으로 계신 유제구 선생님과 함께 구곡에 대한 사전 답사가 이루어 졌다. 추소리가 고향이시기에 정확한 위치며 내용을 설명 듣기 위해서 였다. <율원9곡중 제3곡 임정에서>



청풍정이 있는 석호리 진걸 마을에서 마주 보이는 오봉산이 율원9곡 삼봉 이라고 하신다. 석호리 유래비에도 오봉산 이란 명칭이 나온다. 석호리 마을 할머님 한테 물어 보았더니 강건너 마주 보이는 산이 오봉산이라고 하신다.



석호리 청풍정을  찾아 가면 9곡을 만날수 있다. 석호리 마을 가기전 석호정에서 바라본 청풍정



석호정에서 만나는 율원구곡의 마지막곡 삼봉



청풍정과 석호정 사이 조망터에서 바라본 청풍정



율원9곡중 제9곡 삼봉


▶제9곡 삼봉(三峰)

구곡삼봉대숙연(九曲三峰對肅然): 구곡이라 삼봉을 대하니 숙연한 맘 드는데

원산서무격남천(遠山西무隔南川): 먼 산은 서쪽으로 내달려 남쪽 시내와 떨어졌네

암송계류장신항(巖松溪柳裝新巷): 바위의 소나무 시냇가 버들 마을을 새로 단장하니

과시진환별개천(果是塵환別箇天): 과연 여기가 속세의 별천지로다.


속세의 별천지 가 펼쳐지는 삼봉에서 율원9곡 답사를 모두 마친다. 한문 표기로는 오봉이 맞지가 않기 때문에 삼봉이라 정한것도 한몫 했다고 한다. 여기 까지 왔으니 청풍정을 둘러 본다.







<청풍정 바위면에 새겨진 명월암> 


율원구곡((栗原九曲)-조헌선생의 문집인 ‘중봉집’「유율원차무이도가운(遊栗原次武夷悼歌韻)에 의거 이상주 교수께서 율원구곡과 율원구곡시라 명명하고 세상에 발표하여 나오게 되었다.이번 답사에서는 옥천 향토사 연구회 자문위원이시고 추소리가 고향이신 유제구 선생님과 함께 선답이 이루어진 후 재 답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위 내용들은 옥천신문에 기재된 내용을 참고 하였으며, 이상주 교수님 소개로 유제구 선생님 안내로 조헌 선생의 율원9곡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었음을 밝혀 둡니다. 감사 합니다.


장령산휴양림-장령산-금천버스종점<2시간15분>
금천버스종점-금천-군서면사무소<1시간30분>
군서면사무소-삼양사거리<1시간15분>
삼양사거리-제3곡이지당<1시간>
제3곡이지당-제4곡부소담악추소정<1시간25분>
추소정-환산정상<1시간15분>
환산정상-물아래길-추소리<2시간30분>

옥천시내버스 터미널-금천행(장령산휴양림행) 버스<첫버스아침6시50분>
                             추소리행 버스<막차저녁7시30분>하루4번운행 043-732-7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