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곡(龍山九曲)
최초 구곡의 시초는 중국 송나라의 《주자대전(朱子大全)》 권9에 수록되었는데, 그 제목은 〈순희 갑진년 2월에 정사에서 한가로이 거처하다가 장난삼아 무이도가 10수를 지어 함께 놀러온 동지들에게 주고 한번 웃노라[淳熙甲辰仲春 精舍閒居 戱作武夷櫂歌十首 呈諸同遊相與一笑]〉이다. 이말 을 줄여〈무이구곡가〉가 된것이다. 무이구곡은 복건성(福建省) 숭안현(崇安縣) 무이산(武夷山)에 일대인데, 주희는 1183년 무이구곡의 제5곡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을 지었고, 이듬해 이 〈무이구곡가〉를 지었다.
구곡의 명칭은 1곡‘승진동(升眞洞), 2곡 옥녀봉(玉女峯), 3곡 선기암(仙機岩), 4곡 금계암(金鷄岩), 5곡 철적정(鐵笛亭), 6곡 선장봉(仙掌峯), 7곡 석당사(石唐寺), 8곡 고루암(鼓樓岩), 9곡 신촌시(新村市)로 되어 있다.
〈무이구곡가〉는 서(序) 1수와 1곡부터 9곡까지 각각 1수씩 열 수로 되어 있다.
주희(朱熹),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
[1] (序)들어서며
무이산 산속에 신선이 살고 있고 武夷山上有仙靈
산 아래 찬 냇물 굽이굽이 맑아라. 山下寒流曲曲淸
그 속의 멋진 경치 아시고 싶거들랑 欲識箇中奇絶處
뱃노래 두어 가락 조용히 들어 보소. 棹歌閑聽兩三聲
[2]
1곡이라 구비 냇가에서 낚싯배에 올라타니 一曲溪邊上釣船
만정봉 그림자가 맑은 시내에 잠겼어라. 幔亭峰影蘸晴川
홍교가 한번 끊어진 뒤로 소식이 없더니 虹橋一斷無消息
만학천봉을 푸른 안개가 잡아 가두었네. 萬壑千巖鎖翠烟
[3]
2곡이라 굽이에 우뚝 서 있는 옥녀봉이여 二曲亭亭玉女峯
꽃 꽂고 물 굽어보며 뉘 보라 화장했나. 揷花臨水爲誰容
도인은 황대몽을 다시는 꾸지 아니하니 道人不復荒臺夢
흥겨운 것은 앞산의 첩첩한 푸르름이네. 興入前山翠幾重
해설)
3행 ‘道人不復荒臺夢’을 ‘道人不復陽臺夢’으로 쓰기도 한다. 황대몽(荒臺夢)은 꿈속에 무산(巫山)에서 신녀(神女)와 만나는 것을 말한다.
[4]
3곡이라 굽이에서 그대 보았던 가학선은 三曲君看架壑船
노 젖지 않은 지 몇 해인지 모르겠소. 不知停棹幾何年
바다가 지금 이처럼 뽕밭이 되었으니 桑田海水今如許
포말과 풍등 같은 인생 가련타 하리라. 泡沫風燈敢自憐
해설)
1행 ‘架壑船’은 架壑船棺으로 무이산 일대에서 행하던 시신을 배에 담아 바위 벼랑에 매달아 장사지내던 풍습을 이른다.
[5]
4곡이라 굽이 동서로 마주선 두 바위산에 四曲東西兩石巖
꽃은 이슬 맺혀 바위는 푸른 모포로다. 巖花垂露碧㲯毿
새벽닭 울었건만 인적은 보이지 않고 金鷄叫罷無人見
빈산에 뜬 둥근달이 못에도 그득하오. 月滿空山水滿潭
[6]
5곡이라 굽이 산 높고 운무 두터워 五曲山高雲氣深
언제나 안개비가 평림에 자욱하네. 長時烟雨暗平林
숲속의 나그네 알아보는 사람 없고 林間有客無人識
뱃노래 소리에 만고의 마음 담겼네. 欸乃聲中萬古心
[7]
6곡이라 푸른 물굽이 푸른 병풍 둘러쳤고 六曲蒼屛繞碧灣
초가집은 하루 종일 사립문이 닫혔도다. 茅茨終日掩柴關
객이 와 배를 띄우니 산꽃만 떨어질 뿐 客來倚棹巖花落
원숭이 새 놀라지 않고 봄기운 고요하네. 猿鳥不驚春意閑
[8]
7곡이라 굽이에서 배 몰아 벽탄에 가서 七曲移船上碧灘
대은병이며 선장봉을 다시금 돌아보네. 隱屛仙掌更回看
어여뻐라 지난밤 산꼭대기에 뿌린 비여 却憐昨夜峯頭雨
불어난 비천의 물 그 얼마나 차가울까. 添得飛泉幾度寒
해설)
대은병(大隱屛)은 오곡에 있는 봉우리로 무이정사(武夷精舍)가 그 아래에 있었고, 선장봉(仙掌峯)은 육곡에 있는 봉우리이다.
[9]
팔곡에 바람 불어 연무가 걷히려하고 八曲風烟勢欲開
고루암 아래로는 물이 소용돌이치네. 鼓樓巖下水縈迴
이곳에 멋진 경치 없다고 하지 마오 莫言此處無佳景
단지 유람객이 올라오지 않아서라오. 自是遊人不上來
[10]
구곡이 끝나려하니 눈앞이 탁 트이고 九曲將窮眼豁然
비이슬 젖은 뽕밭 삼밭 평천에 보인다. 桑麻雨露見平川
젊은 어부 다시 무릉도원 길을 찾지만 漁郎更覓桃源路
이곳 말고 인간 세상에 별천지 있을까. 除是人間別有天
〈무이구곡가〉를 짓기 전에 먼저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12수를 지었다.
雜詠 이란 여러 가지 사물에 대하여 읊은 시가를 말한다. 그 내용은 이렇다.
〈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 12수
정사(精舍) 12-1
琴書四十年 거문고와 책을 벗 한지 40년
幾作山中客 몇 번이나 산중의 객이 되었던가
一日茅棟成 어느 날 띠 집 하나를 완성하니
居然我泉石 확실히 나의 샘과 산이 되었네
【精舍 】
• 琴书四十年,几作山中客。 一日茅栋成,居然我泉石。
인지당(仁智堂) 12-2
我慙仁知心 나는 인과 지의 마음에 부끄러운데
偶自愛山水 우연히 스스로 산수를 사랑하도다
蒼崖無古今 푸른 산악은 예나 지금이나 같고
碧澗日千里 푸른 시내는 날마다 천리에 있네
【仁智堂】
• 我慙仁知心,偶自爱山水。 苍崖无古今,碧涧日千里
은구실(隱求室) 12-3
晨窓林影開 새벽 창에 숲 그림자 열리고
夜枕石泉響 밤중 베갯머리엔 샘물 소리 울리네.
隱居復何求 은거함에 다시 무엇을 구하며
無言道心長 말없는 가운데 도의 마음은 자라네
【隐求斋 】
• 晨窗林影开,夜枕山泉响。 隐去复何求,无言道心长
지숙료(止宿寮) 12-4
故人肯相尋 친구가 서로 찾는 것을 즐겨하여
共寄一茅宇 함께 띠 풀 집에 머물렀네.
山水爲留行 산수에 머물렀다 가니
無勞具鷄黍 힘쓰지 않아도 닭 모이를 갖추어주네.
【止宿寮】
• 故人肯相寻,共寄一茅宇。 山水为留行,无劳具鸡黍
석문오(石門塢) 12-5
朝開雲氣擁 아침이 열리면 구름 기운에 안기고
暮掩薜蘿深 해 질 녘이면 담쟁이 넝쿨 무성 하네
自笑晨門者 새벽 문에 기대어 홀로 웃는 이
那知孔氏心 어찌 공자님의 마음을 알까?
【石门坞】
• 朝开云气拥,暮掩薜萝深。 自笑晨门者,那知孔氏心
관선재(觀善齋) 12-6
負笈何方來 스승 찾아 어디에서 오셨는가?
今朝此同席 오늘 아침 자리를 함께 했네
日用無餘功 날마다 하는 공부로 다른 일 없이
相看俱努力 서로 격려하며 같이 노력할 뿐
【观善斋】
• 负笈何方来,今朝此同席。 日用无余功,相看俱努力
한서관(寒棲館) 12-7
竹間彼何人 저 대숲에 서있는 이 게 누구인가
抱甕靡遺力 옹기를 안고 힘쓰기를 버리지 않네
遙夜更不眠 긴긴 밤 다시 잠 못 이루어
焚香坐看壁 향 피우고 앉아 벽만 처다 보네
【寒栖馆】
• 竹间彼何人,抱瓮靡遗力。 遥夜更不眠,焚香坐看壁。
만대정(晩對亭) 12-8
倚笻南山巓 지팡이에 의지해 남산 정상에 오르니
卻立有晩對 도리어 만대봉(晩對峰)이 서 있네
蒼峭矗寒空 푸르고 높게 차가운 하늘과 가지런한데
落日明影翠 저녁놀은 푸른 절벽을 선명하게 비추네
【晚对亭】
• 倚筇南山巅,却立有晚对。 苍峭矗寒空,落日明影翠。
철적정(鐵笛亭) 12-9
何人轟鐵笛 어떤 사람이 철적을 요란하게
噴薄兩崖開 뿜어내어 양쪽 언덕을 열었네
千載留餘響 천년의 남은 소리 남아 있으니
猶疑笙鶴來 오히려 생황 부는 학이 오는 듯하네
【铁笛亭】
• 何人轰铁笛,喷薄两崖开。 千载留余响,犹疑笙鹤来。
조기(釣磯) 12-10
削成蒼石稜 깎아 세운 푸른 모서리
倒影寒潭碧 찬 못에 비쳐 푸르도다
永日靜垂竿 종일 조용히 낚시를 드리우니
兹心竟誰識 이 마음을 끝내 누가 알리
【钓矶】
• 削成苍石棱,倒影寒潭碧。 求日静垂竿,兹心竟谁识。
다조(茶竈) 12-11
仙翁遺石竈 선옹이 돌 아궁이 남겨 놓았으니
宛在水中央 완연히 물의 한 중앙에 있도다
飲罷方舟去 차를 다 마시고 배로 나아가려고 하니
茶烟裊細香 차 연기는 향기를 내며 하늘거리네
【茶灶】
• 仙翁遗石灶,宛在水中央。 饮罢方舟去,茶烟袅细香。
어정(漁艇) 12-12
出載長烟重 나갈 때는 무거운 안개를 오래 싣고
歸裝片月輕 돌아올 때는 가벼운 조각달을 싣고 오네
千巖猿鶴友 많은 바위는 원숭이와 학의 친구이고
愁絶棹歌聲 뱃노래 소리에 근심이 사라지네
【渔艇】
• 出载长烟重,归装片月轻。 千岩猿鹤友,愁绝棹歌声。
조선의 선비들에게는 중국은 하늘과 같고 신과 같은 존재였다. 조선은 유학의 나라였기에 중국의 주자학은 조선에서는 단연코 절대적 권위의 상징이었다. 주자학을 집대성한 것은 송나라때 주자(주희)에 의해 집대성 되었다. 조선에서 주자는 선망의 대상이고 영원한 스승이었다. 그러기에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선망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주자가 무이산의 풍경이 아름다운 계곡 9곳을 선정하여 구곡을 설정하고 제5곡에 무이정사를 짓고 후학을 가르치면서 무이도가를 읊자, 조선의 선비들의 입에 도 회자되어 내 노라 하는 모든 선비들은 주자의 무이생활을 선망하여 경승지 도처에 구곡을 설정하게 되었다.
조선의 선비 중 구곡을 설정하고 정사를 운영 한 첫 선비는 율곡 이이였다. 율곡 이이는 황해도 해주 고산면 석담에 은거하면서 고산구곡을 돌며 구곡의 이름을 짓고5곡에 은병정사(隱屛精舍)을 짓고 은거한 것이 효시가 되었다.
이후 퇴계 이황이 괴산에 선유구곡을 설정하였고, 우암 송시열이 충북의 화양계곡에 화양구곡을 설정하였다. 그리고 조중봉 조헌은 옥천에 율원 구곡을 변계 윤봉구는 가야산에 가야구곡을 설정하였다. 이런 조선선비의 풍류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구곡문화는 일제강점기 까지 이어져 우리고장 계룡산에서 그 절정을 맞는다.
정묘년 1927년에 계룡산 갑사계곡에 벽수 유덕영이 갑사구곡을 만들고, 임신년 1932년에 취음 권중명이 상신계곡에 용산구곡을 새기게 된다.
“아침에 도를 듣고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라는 철학이 있었기에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던 조선의 선비 정신이 담겨있는 구곡을 말하라 하면 단연코 계룡산 상신계곡에 만들어진 용산구곡이 우리나라 최고(最高)의 구곡이다.
용산구곡을 선정한 취음(翠陰)권중명(權重冕)선생(1856~1938)은 조선의 학자로 한양에서 태어나 조정에서 여러 내직을 거쳐 외직으로 황해도 평산군수로 나갔다가 능주군수로 있을 때 한일합방의 비보를 듣고 관직을 버린후 비통에 젖어 은거해 있다 1916년 봄 계룡산 상신리로 들어 왔다.
그의 학문을 따르는 제자들을 위해 사랑채에 서당을 차렸으며 망국의 서러움 속에서 두문불출로 선비로서의 절개를 지켰으며 나라의 운명이 풀릴날을 기다리다 서광을 보지 못하고 타계한 비운의 선비다.
시집이52권 문집이14권 그리고 기행문이 1권 모두 67권의 문집이 있었으나 애석하게도 한국전쟁당시 공산군이 선생의 집을 점거 하여 3개월 간 사용하며 휴지감 땔감으로 모두 풍지박산 되고 기행문인 금강산유람기 한권만 전할뿐 66권은 분실 되었다.
그는 1916년 회갑되던 해에 계룡산 상신리에 들어와 집 사랑채에 서당을 차리고 제자를 양성하면서 살다 83세에 돌아 가셨다.
그는 이곳에 살면서 1932년 "용의 일생을 통해 조국광복을“이라는 의미를 붙여 상신리계곡에 9곡을 선정하여 이를 바위에 새겼으니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최고(最高)의 용산구곡이다.
봉우(鳳宇) 권태훈(權泰勳)(1900~1994)은 취음 권중면 선생의 장남으로 김정빈 장편소설 단(丹)(1984년 정신세계사 발행)의 실지 인물로 우리나라 단학의 대가이다. 좌우명 으로 去去去中知 行行行裏覺 가고 또 가다 보면 알게 되고 다니고 행동하다보면 마음속으로 깨달은 것이 있다로 유명하다.
1곡부터 올라가면서 살펴본다.
龍山九曲
苐一曲 尋龍門, 上莘沼入口, 開學洞門
鳳宇 權泰勳 頌德碑
翠陰洞天
桃源日月 莘野春秋
放花隨柳 女川
苐二曲 隱龍潭
厥隱
苐三曲 臥龍岡
紫陽山月同圓萬川 白鹿潭波盈放四海
苐三曲 逰龍坮
翠陰書 紫陽詩 崔種恩 權泰勳
居然我泉石 江山風月閑者主人
苐五曲 黃龍岩
太極岩 壬申八月日 翠陰 權重冕
湖西 第一山水 弓山乙水
明月流水寶鑑開
苐六曲 見龍(沼) 彈琴
苐七曲 雲龍澤
苐八曲 飛龍湫
苐八曲 神龍淵
九龍朝天
桃源日月 莘野春秋 는 취음 권중면 선생이 상신마을 입구 장승에 새겨진 글이다. 해석을 하면
桃源日月 : 매일마다 달마다 즉 언제나 무릉도원 같은 상신이다.
莘野春秋 : 이것도 마찬 가지로 봄 여름 으로 즉 언제나 영원히 신야같은 상신이다. 뜻이다.
해석을 덧붙이면 桃源은 너무나 유명한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가상의 선경(仙境). 중국 후난 성의 한 어부가 발견하였다는, 복숭아꽃이 만발한 낙원이다. ‘별천지(別天地)’나 ‘이상향(理想鄕)’을 비유하는 말로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을 말한다.
신야(莘野)는 중국의 지명이다. 신야하고 관련된 인물이 이윤(伊尹)이다. 이 이윤과 관련된 고사 성어는 천자문에 나온다.『천자문』의 예순일곱 번째 문장에 “磻溪伊尹(반계이윤), 佐時阿衡(좌시아형)”이란 문장이 나온다. 그 뜻은 강태공과 이윤은 (주 무왕과 은 탕왕으로 하여금)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도와 (공을 세움으로써) (주와 은나라의) 대신이 되었다' 는 내용이다.
磻溪伊尹(반계이윤)에서 磻溪는 주나라 태공망 여상을 말하고 莘野는 은나라 伊尹을 말한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요순시대를 거쳐 하나라가 세워지고 하나라의 마지막 왕인 걸왕은 말희의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 도탄에 빠진다. 이때 은에 있던 탕이 신망을 얻고 신야(莘野)에 3번이나 찾아가 이윤을 얻어 하나라를 멸망시키고 은나라를 세운다. 걸왕의 애첩 말희는 고서에 따르면 ' 검고 윤기 나는 긴 머리칼을 가지고 있고, 그 머리가 댤걀 모양으로 얼굴를 감싸며, 걸음걸이는 나비처럼 사뿐사뿐하다. 피부는 하얗고, 윗입술은 가늘고 아랫입술은 도톰했다'고 한다.
은나라의 주왕도 달기와의 주지육림에 빠져 나라가 도탄에 빠진다. 이때 주에 있던 문왕이 반계(磻溪)에서 강태공을 만나고 다음 왕인 무왕이 강태공과 함께 목야전투에서 4만7천명으로 70만의 은나라 대군을 물리쳐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운다. 이 목야 전투는 적은 수로 많은 적을 섬멸한 기적의 전쟁이라고 불린다. 강태공이 제나라 왕이 되어 떠날 때 아내를 두고 유명한 고사를 남긴다. 覆水不返盆(복수불반분) 한번 엎지러진 물은 주어 담지 못한다.
주왕의 애첩 달기는 어떤 여인인가?
<살구 같은 얼굴빛에 복숭아처럼 분홍색 뺨, 머리카락은 구름처럼 풍성하고 칠흑처럼 검구나. 눈썹은 봄 산처럼 가늘고 날렵하며, 눈동자는 가을파도처럼 둥글다. 가슴은 풍만하고 허리는 잘록하며, 엉덩이는 풍성한데 다리는 맵시 있게 잘도 빠졌다. 햇빛에 취한 해당화, 비에 젖은 배꽃보다도 아름다움이 더하다.> 고 돼있다.
桃源日月 莘野春秋 는 상신은 무릉도원 같은 별천지 이상향의 마을에다 하나라를 멸망 시키고 은나라를 세운 명재상 이윤 같은 학덕 높고 지혜로운 명재상이 나온다는 마을이란 뜻이다. 그러니 이 장승을 세운 시기는 일제강점기를 고려 할 때 아름다운 상신에서 언젠가는 나라를 구할 명재상이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 명문이다.
용산구곡(龍山九曲)
제1곡 尋龍門(심용문) 어쩔 수 없는 일제 강점기를 맞게 되는 우리 민족이다.
제2곡 隱龍潭(은용담) 힘이 부족한 대한제국은 수탈에 그저 당할 뿐이다.
제3곡 臥龍岡(와룡강) 힘겹게 광복을 위해 몸부림 시작한다.
제4곡 逰龍坮(유룡대) 3.1운동과 식민지 교육에 맞서 민족 교육 진흥 운동은 불길처럼 일어나고
제5곡 黃龍岩(황룡암) 신사 참배 강요를 거부한 많은 백성들은 투옥되고 학교는 폐쇄 되고 그래도 항일 투쟁은 더욱 불길처럼 일어난다.
제6곡 見龍(沼)(견룡(소)일제는 민족 말살 정책과 군국주의 찬양을 강요 하며 젊은이 들을 전선으로 내몰고 있다. 그러나 그에 맞서 이제는 무장 항일 운동 단체들이 만들어 지고 투쟁을 개시 한다. 용이 보이듯 우리 민족의 광복도 희망이 보이기 시작 한다.
제7곡 雲龍澤(운룡택) 패하지 않을 것만 같던, 그 들이 말하는 천황군대도 패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용이 구름을 만나듯 연합군을 만난다.
제8곡 飛龍湫(비룡추) 용이 하늘로 나르니 무엇이 문제랴 독일이 항복하고 일본도 만찬가지가 될 것이다.
제9곡 神龍淵(신룡연) 8.15 드디어 일본이 항복하며 대한민국이 새롭게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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