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성혈 여행과 이야기

성혈 여행 11번째(남원과익산암각화따라)

느낌표!! 2013. 12. 18. 00:14

 

성혈 여행 (남원암각화와익산암각화따라)

 

답사일자 : 2013년 12월 17일 화요일 맑음

답사코스 : 남원대곡리암각화/임실오수빨래판선돌/익산미륵사지와구룡마을뜬바위윷판형성혈/익산호암리범산암각화

답사인원 : 안여종대표님,돌까마귀,취홍정,뫼꿈이,해피투게터님,느낌표!

 

국민핵교 시절 소풍날이 잡히면 왜 그리 설레 이던지 도시락에 눈깔사탕 하나 사이다 한병이면 그것으로서 대 만족 이었다. 안대표님으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들어 왔다. 내일 유현님 사진 작가도 간다고 합니다. 와~ 오늘 잠을 잘수 있을려나 모르겠습니다 라는 답장을 보내고 잠자리에 든다. 나이가 들었나 보다 새벽 5시에 눈이 떠지고, 사과넣고 귤 챙기고 그리고 분필과 손빗자루..또 뭐 챙겨야 하나..도시락을 챙기지 않으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겨울이 아니면 매주 도시락 챙겨 산으로 다름 질 쳤던 것을 문화유산 답사 라니 그저 따라 가면 된다 여유가 만만이다. 7시30분 전민동에서 취홍정님, 7시40분 둔산동에서 뫼꿈이님을 태우고 8시 유성 나들목 만남의 광장에 도착 하니 유현민작가님 해피투게더님과 돌까마귀님 그리고 안대표님이 도착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남원으로 향한다.

 

전북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 상대마을 입구 봉황대 에 도착 하니 아~저곳이 유명한 암각화가 있는 봉황대 구나 하는 직감이 온다. 2개의 공적비, 봉황정, 멋진 소나무와 어우러진 기암괴석이 눈에 확 들어오기 때문이다. 먼저 암각화을 배경으로 첫 출발 사진을 찍는다 답사 증거로는 사진 만큼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는 만큼 느끼기에 설명을 아니 들을수 없지 않는가 우리야 도무지 알수 없는 바위 그림 이지만 설명이 더해 지니 아~하는 목구멍에서 넘어오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린다. 이 대곡리 암각화는 검자루 모양 같이 생겨 검파형 암각화라 하고 후대 그림, 즉 발전된 그림으로 태양신의 상대되는 지모신을 나타내는 그림이라고 한다. 바로 받아 적어도 헷갈릴 판에 들은 말로만 적을려니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인터넷 자료로 대신 한다.

 

 

전북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 상대마을 입구의 봉황대

 

 

봉황대

 

 

2 점의 바위 그림으로 문화재로 지정 된 것에 적잖이 놀랐다.

 

 

 

오른쪽 소나무옆으로 봉황대 각자, 정면으로 보이는 맨윗쪽 바위에 암각화, 중요한것은 봉황대 각자와 암각화 사이 정면 바위에도 암각화가 있다는 사실이다.

오른쪽 으로 (사)문화유산울림 대표님, 대전 의 문화유산을 이분 만큼 사랑 하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성혈 여행가로 나서게 된 것도 이분의 인연 때문이다.

다음분은 유현민 사진 작가님, 작품 전시회에서 받은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동행이 되어 얼마나 기뻣는지 모른다. 바위를 사랑하고 바위를 찍는 작가 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하루종일 바위와 놀며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다니 세상  참 특이한 사람도 많은것 같다

어허 유일 하게 모자 쓰셔네 이주진님, 자칭 대전 산천이 좋아 고향을 못 떠나시는 분이다. 우리 에게는 대청호 오백리길 개척자로 돌까마귀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분이다. 나에게는 영원한 대장 형님이다.

카메라는 메셨는데 찍는것 못봤네요, 조망이 없어서 일까 뫼꿈이님, 내가 존경하는 산꾼 으로 대전시계를 강산에님과같이 개척 하신 분으로 조망 사진의 대가로, 산경표 제작자로, 산에서는 산신령과 맞먹는 사람이다 . 한복에다 맨발로 산행 하는 사람 봤습니까?

취홍정님 뵈온지는 얼마 안되었지만 현재 대전둘레산길 운영자로 활동 하시고 대청호 오백리길 등 산과 들을 거침없이 활보 하시는 분으로 지금은 장구에 취미가 들어 열심인 분이다. 나도 저렇게 노년을 멋지게 살수 있을까 부럽기만 한 분이다.

마지막으로 해피투게더(김재성)님 교직 생활을 하다 정년 퇴직 하시고 지금은 (사)문화유산울림 강사로 활동하시고 계신 분으로 구 도청사에 해설 을 맡고 계시기에 구 도청사에 가시면 가끔은 만날수 있는 분이시다.

 

 

검파형 암각화는 고령과경주 가 가장 먼저 제작 되고 그 다음 영일 칠포리 그리고 더 발전된 그림이 이 대곡리 암각화  라고 영일 칠포리 암각화는 서로 분리되어 그림이 존재 하지만 이곳은 칠포리 그림들이 합하여져 나타난 암각화로 가장 후기에 제작 되었다고..다음달 1월 7일로 잡혀 있는  영일 칠포리 암각화 답사가 더 기대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봉황정 안에는 이곳 봉화대를 찬한 답사기 들이 걸려 있다.

 

 

대부분 암각화 앞으로는 대부분 물줄기가 지나 간다고 한다. 고래 그림으로 유명한 반구대 암각화도 그 앞으로 흐르는 물줄기 때문에 고민이 많은 곳이다. 해설을 듣고 봉황정를 거쳐 공적비 사이 길로 봉황대를 오른다.

 

 

여기의 암각은 일명 '패형암각(牌形岩刻)' 또는 '검파형암각 (劍把形岩刻)'이라고 불리는 암각화로서, 전세계에서 한반도에서만 발견되는 문양(紋樣)이다. 고령, 경주, 영천, 영일, 영주 등 주로 경상도 지역에서만 발견되고 있는 것으로, 아직 학계에서는 이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 내려지지 않고 있으며, 그 용도나 기능에 대하여 다양한 학설이 제기되는 매우 독특한 문양 암각이다. 그중에서도 여기 봉황대의 암각은 그 무늬가 매우 다양하면서 화려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며, 암각의 크기와 기법상으로는 영일 칠포리와 비슷하다. 영일 칠포리의 암각화들은 고령과 경주에 비하여 후기로 여기고 있는데, 여기의 암각화는 칠포리에 비하여 문양이 발달되었다는 점에 비추어 칠포리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현재까지 발견된 '검파형암각(劍把形岩刻)' 가운데 가장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출처] 남원 대곡리 암각화 (南原 大谷里 岩刻畵)|작성자 한마루

 

 

암각화 주위로도 많은 성혈들이 존재 한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그림은 구멍 파는것 부터 시작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더욱이 돌 위에서는, 물론 이곳의 그림은 성혈로 이루어진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파는것을 넘어 그려냈으며 더욱이 상징성이 담겨 있는 그림이니 말이다. 그럼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어떤 사람 일까

 

 

과연 이 그림을 그려낸 화가는 누구일까 . 지금이야 전문 화가가 있어 그림 그리는 것만으로도 먹고 살수 있지만 선사시대 화가는 과연 이런 그림으로 대우 받고 먹고 살수 있었을까

 

 

하늘과 맞닿아 있는 바위그림을 보며 많은 것을 생각 해보게 된다.

 

 

선명한 검파형 바위 그림 오른편 바위 정면에 또 다른 바위 그림이 존재한다.  또 다른 암각화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왔을시에는 육안으로 찾기가 불가능 하다. 7명이 흩어져 숨은 그림 찾기를 얼마나 했는데..스마트폰에 비친 그림을 대조 분필로 그려 냈음으로 겨우 확인 할수 있다.

 

 

이 그림이 먼저 그려 졌다고 하네요  우리가 봐도 그림 차원이 다른 것을 느낄수 있었다.  아주 먼 옛날 어떤 화공의 정열적인 몸부림의 체취를 두 곳의 바위에서 느낄수 있었다. 봉화대 각자 위로 오르면 정상이다.

 

 

자연 바위 사이로 돌을 고여 영락 없는 고인돌 이다. 발상의 전환이 이런 것인가 그럼 성혈과 고인돌은 뗄수 없는 관계이니 성혈도 있으렸다

 

 

그렇다  정면 윗쪽에 1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다.

 

 

1개의 성혈이 정중앙에 새겨져 있다. 옆 암각화 바위로 간다.

 

 

암각화 위 평편 바위로 오르면 넓은 들이 눈 앞으로 펼쳐지고 그 앞으로 물줄기가 가로 질러 가고 있다. 그리고 넓은 반석 위에 위와 같은 성혈 3개가 삼각형을 그리며 새겨져 있다 .

 

 

암각화 반석위로 3개의 직삼각형 성혈이 새겨져 있다.

 

 

암각화 오른쪽 바위에도 1개의 성혈이 새겨져있다.

 

 

암각화 바위를 바라보면서 1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다

 

 

윗쪽으로 자연 현상의 구멍 인지 7개의 구멍을 확인하고  공적비가 있는 곳으로 내려 선다.

 

 

이곳 면장 공적비 오른쪽 자연 암반에도 13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다.

 

 

윗쪽으로 6개

 

 

옆면으로 7개의 성혈이 있다.

 

 

이곳 봉황대 암각화와 성혈을 돌아 보면서 또 다른 세상이 있었음을 경험 하였다. 검파형 바위 그림을 그린 사람과 성혈을 새긴 사람과의 차이는 없을지언정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작품과 모진 삶이 담겨 있는 구멍과는 차원 자체가 다르다는것을...당당하게 걸어 가는 검파형 화가와 이곳 바위를 갈고 있는 남루한 아낙의 모습이 대조되어 그려 지는 것은 무슨 까닥인지 모르겠다. 임실군 지사면 오수 마을로 간다.

 

 

우리 어릴적 교과서에서 정식으로 배웠던 의로운 개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인간에게 가장 심한 욕이 먼지 알어?

개 같은 놈!

에이 그거는 하수가 쓰는 욕이고

개 보다 못한놈 !

그건 하수 하수가 쓰는 욕이고

개 새끼 같은 놈!

그건 하수중 최 하수가 쓰는 욕이고

그럼 뭐여..!!

야이 ! 인간아 인간이 되라...

????  갑자기 썰렁 해 진다. 그리고 빵 터 진다.

 

 

 

개 주인집을 둘러 보고 바로 뒤 돌아 서면 빨래판 선돌이 정면으로 보인다.

 

 

전북 임실군 지사면 오수마을 빨래판 선돌

 

 

 

 

 

선돌의 개념이야 아는 이야기고 구멍의 갯수와 의미가 주 목적 이다. 딱 보면 10개 이다. 성혈을 찾아 다니다 보면 갯수가 천차 만별 이다. 시기에 따라 사람에따라 보는 눈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안대표님이 한마디 한다. 구멍 숫자도 그렇고 12지신은 너무 확대 해석한 것 같다고 뫼꿈이님은 윗7개와 밑부분이 떨어진 것을 염두에 두고 북두칠성 이나 칠성판 개념으로 새겼을 것 같다고 하신다. 북두칠성  성혈이 새겨진 이후 나머지는 다른 사람에 의해 새겨진 것이라고..모두 박수가 이어진다  옳소...!!!!  성혈 이야기는 이래서 좋다. 마을 중심가에 있는 개 비 가 있는 곳으로 간다.

 

 

이 비를 보며서 정말로 나는 이 개 보다 못한 인간으로 살다 죽는구나  속으로 읊는다. 누가 나를 위해 죽어서 비를 세워 줄것 인가 말이다.

 

 

인간과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에 있기에 이야기도 많다. 마침 산꾼님이올린 개 이야기가 있어 올려 본다.

 

 개와 남편의 공통점

 

1. 끼니를 챙겨 줘야 한다.

2. 가끔 데리고 놀아 줘야 한다.

3. 복잡한 말은 못 알아듣는다.

4. 초장에 버릇 잘못 들이면 내내 고생한다.

 

남편이 개보다 편리한 점

 

1. 돈을 벌어온다.

2. 간단한 심부름은 시킬 수 있다.

3. 훈련 안 시켜도 대소변을 가릴 수 있다.

4. 집에 두고 여행을 갈 수 있다.

5. 같이 외출할 때 출입제한 구역이 적다.

 

그럼에도 개가 남편보다 좋은 점

 

1. 신경질날 때 발로 찰 수 있다.

2. 한 집안에 두 마리를 길러도 뒤탈이 없다.

3. 강아지의 부모형제로부터 간섭받을 필요가 없다.

4. 때로는 집� 잘 본다

5. 외박하고 들어와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꼬리치며 반가워한다.

6. 데리고 살다 싫증나서 버릴 때 변호사가 필요없다.

 

우스개 소리지만 나 같은 중눍은이 한테는 어떻게 처신 해야  밥을  제대로 얻어 먹을 수 있는지를 잘 알려 주는 교훈의 말 같다.

 

 

이 개 비 공원 여러개의 바위돌 위에는 여러개의 성혈 들이 새겨져 있다.

 

 

들어 오면서 고목앞으로 1개의 성혈

 

 

 

고목 옆으로 반듯한 바윗돌에 3개의 성혈

 

 

그리고  공원 휴식 의자 대용을 사용한  받침돌 위에 각각6, 7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다.

 

 

 

 

 

 

어떤 곳에서 무슨 목적으로 사용했던 돌 인지 모르지만 성혈 속에 담겨져 있던 소망과 기원이 모두 이루어져 이렇게 나마 남아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안겨 주는 역활로 대신 하는 성혈로 영원히 남기를 바란다. 더는 성혈 수가 늘어나는 일이 없는 세상, 모두 에게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 망루로 발길을 잡는다.

 

 

 

망대 까지 오르는 사다리는 나선형으로 했을까 2표, 아니다 제작비가 싸야 하기 때문에 직선 이다 2표, 망대 까지 직선으로 이어 졌다고, 점심은 맛집으로 유명한 슬치 에서 다슬기 탕으로, 모두 가격에 비해 맛있다고 몰표,오후 일정의 출발지 익산미륵사지로 간다.

 

 

익산  미륵사지

 

 

 

오늘의 목적은 이 미륵사지 주춧돌 위에 새겨진 윷판형 성혈를 찾기 위해 서다.

 

 

드디어찾았다. 안여종 대표님이 찾은것이지만 다른 한곳은 대표님도 찾지를 못했다고

 

 

성혈 최고 걸작품이 윷판형 성혈 이라고 생각 한다. 이하우 선생 논문집에서 북극성을 중심으로 일주천하는 북두칠성을 형상화한 성혈이라 했다. 하늘의  운행 원리를 담아 표현 했다 하니 대단한 성혈인 것이다. 이곳 미륵사지 윷판형 성혈은  만든 시대를 추론 할수 있다는 것에도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한다.  미륵사지 윷판-구룡마을윷판-미륵산윷판-범산윷판 멋진 윷판성혈을 따라 걷는 이야기 길이 될수 있는 곳이다. 덤으로 호산 암각화는 또 다른 묘미를 느끼기에 충분한 곳이다. 미륵사지 근처 구룡마을 뜬 바위로 간다.

 

 

구룡마을 뜬 바위 한번에 봐도 범상치 않음을 알수 있다.

 

 

 

현재 우리가 사용 하고 있는 윷판의 모양은 사각형 네모진 모양 이다. 그런데 성혈로 새겨진 윷판형 성혈은 하나 같이 원형 인것을 보면 윷판은 둥근것이 원래의 윷판 모양 이었다는 것을 추론 할수 있다.  그런데 이곳 뜬 바위 윷판형 성혈은 원형에 가깝기는 하나 사각형이고 현 윷판과 너무 동일한 느낌이다. 그리고 큰 구멍을 제외 하고는 뾰쪽한 철심으로 쪼아 만든 것임을 알수 있게 한다. 윷말이  들어 가는 입구도 표시 해놓은 것으로 봐서 내 개인적인  생각 이지만 이것은 비록 윷을 놀수 있는 넓은 장소가 아닌 바위 면에 새겨다 해도 근래에 놀이 윷판을 그대로 옮겨 놓은 윷판형 성혈 이지 안나 싶다. 큰일날 소리지만 느낌을 그대로 적어 본다. 오늘의 마지막 호암리 호산으로 향한다.

 

 

정면으로 보이는 동산이 호산

 

 

 

먼저 양쪽 넓직한 암반위에 새겨진 윷판형 성혈부터 올라 간다.

 

 

그런데 이곳에 도착 하여 보니 누군가 분필로 윷판형 성혈을 그려 놓아는데 금방 다녀간 느낌이다. 구룡마을 뜬 바위 윷판형 성혈도 그랬는데 참 우연찮게 같은 코스를 뒤쫗아 가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다. 윷판형 성혈에서 바로 넘어 가면  암각화 바위가 나온다.

 

 

 

 

 

 

▲ 고조선 시대의 산목문자로 수를 셀 때 나무토막을 형상화한 숫자를 표기한 문자로 보고 있다.

 

ⓒ2005 익산고적연구회

 

 

 

6개의 구멍이 있는데 아마 암각화를 만들려다 만 흔적이 아닐까 하는 곳이다 다른 바위에 비해 단단한 바위로 보여 지기 때문이다.

 

 

가족관계로 풀이 하는 돌까마귀님-큰그림 아래로 일정한 작은 그림이 반복 된다. 부모 밑에 4형제 5남매을 두는 형식과 똑 같은 모양으로 반복 되어 진다

 

 

무슨 알 같은 바위 전체를 이름모를 기호로 도배를 하여 신비감 마저 들게 한다. 정말 우주인이 내려와 새겨 놓고간 흔적 같기도 하다.

 

 

그런데 말입니다. 뒤돌아 가면 엄청난 일이 벌어 진다.

 

 

보이는가 바위 천체가 거북 닮은 모습으로 변신 된것을 왼쪽 안대표님 서 있는 곳이 거북 머리 쪽이다. 알수 없는 그림으로 그렸지민 전체는 거북으로 표현한  위대함에 신음 소리가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오게 하는 곳이다. 거대한 거북이 드 넓은 세상을 향하고 있는 모습을, 위로 올라 가면 또 다른 엄청난 광경을 목격 하게 된다.

 

 

쨘~~~또 다른 거북 모습이다. 거대한 거북바위에 작은 거북을 만들어 놓았다. 원래 거북 등은 둥글게 위로 올라온 모습이다. 우리가 논 방향에서 바라본 모습이 원래 거북 모습이다. 그런데 이 거북은 홈을 파내여 물에 잠기도록 하였다 그 물빠짐  길은  영락 없이 헤엄 치는 거북의 다리로 나타나고 거북등은 일정한 간격 모양으로 파내여 등을 표현 하고, 마지막 화룡정점 성혈로 거북의 머리를 만들어 우주를 향해 헤엄 치는 거북을 완성 하였다.

 

이곳에서 대전 으로 차량을 돌리는 것으로 모든 일정을 마무리 한다.

7명이 남원을 출발 이곳 범산 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온 길이 너무나 좋았다.  안내해준 안대표님과 같이한 분들 재밋고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