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미륵산 윷판형 바위그림<巖刻畵>을 찾아서
답사일자 : 2013년 1월 30일 수요일 맑음
답사코스 : 미륵사지-구룡마을뜬바위-미륵산정상-통신탑봉-심곡사-우금마을-범산
답사인원 : 현행님,맑을숙님,느낌표!
과거로의 익산 나들이,다른 생각과 각도에서 바라보는 익산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 여러분과 같이 느껴 보겠습니다. 자 익산으로 떠납니다.
미륵사 앞에서 백제 의 천체관측을 담당하는 일관 부서에서 나온 익산님을 만나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눕니다. 무왕 폐하와 선화왕비마마는 안녕하십니까 ? 백성들은 선화왕비라 부르는데 괜찮은지 모르겠습니다. 백성들이 그렇게 부르면 당연하죠 요즘 정무에 여념이 없습니다. 오늘 이렇게 익산님을 모시게 된것은 오늘 답사 하고자 하는 곳에 혹 익산님이 몸담고 계신 일관업무에 연관성이 있지 않나 싶어 이렇게 동행의 부탁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명함을 건네 받습니다. 일관 <익산> 그리고 행정의 업무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일관 [日官]
백제시대 천문관측과 점성(占星)을 담당하던 관원.
고구려에서는 일자(日者)라고 했다. 삼국은 모두 농업에 기본을 두고 있었으므로, 그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천문·기상·역법에 관심을 기울여 일식·월식·유성·혜성·지진·우뢰 등 천체기상 현상을 관측·기록했다. 이같은 천문지식은 농사를 짓는 데 중요한 것이었으나 정치적인 성격도 컸다. 그당시에는 자연의 원리를 하늘에서 구하며 하늘이야말로 정치이념의 중심으로 여겨 일식·혜성·지진 같은 천체현상의 이변은 그 자체만으로도 흉조로 받아들였으며, 지배자는 이를 하늘의 경고로 생각함으로써 그의 관측과 기록은 국가의 큰 관심사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삼국은 천체 관측을 담당하는 일관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 백제의 경우에는 따로 외관 10부(部) 가운데 이 일을 전담하는 일관부까지 설치했다.
회랑을 따라 이어진 미륵사 가람이 엄청 나군요 익산님을 따라 미륵사 경내로 들어 갑니다. 2개의 연못 뒤로 멋진 회랑이 펼쳐지고 2개의 당간 과 정가운데 목탑 그리고 양옆으로 세워진 동서 양탑을 따라 이어진 미륵사 전경이 황홀하게 펼쳐 집니다. 익산님의 안내와 설명으로 미륵사 경내을 둘러 보고 미륵사를 나옵니다.
먼저 구룡마을 뜬바위 윷판형 바위 그림을 만나기 위해 익산님이 앞장서 미륵사를 출발 합니다. 이곳 미륵사에서 구룡마을 뜬바위 까지는 3.5km 입니다.
아름다웠던 미륵사는 폐사가 되어 없어지고 일부의 흔적만이 남아 그 시대의 번창했던 과거를 말해 주는듯 합니다. 미륵사지 정면 좌측 이정표 따라 올라 가야 합니다. 뜬바위 2.0 km 구룡마을 1.8km 이정표 부터는 뜬바위 이정표는 사라지고 구룡마을 익산 둘레길 대나무 숲길 이정표 따라 진행 하면 됩니다. 온통 대나무로 둘러 쌓인 구룡마을 뒤편 오름 시작점에 뜬바위가 있습니다.
익산님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우리 백성들은 주변환경과 삶이 서로 떨어져 있는것이 아니라 서로 도와주고 받는 연결되어진 것이라 생각 하고 있습니다. 이 바위도 구룡마을 백성들의 애환을 들어 주고 감싸아 주는 수호신격인 역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룡마을 백성들은 이 바위를 신성시 하지요 익산님의 설명에 저절고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뜬바위 정면을 바라 보고 포개진 좌측 맞닫는 부분에 윷판형이 새겨져 있습니다.
익산님이 설명하신 내용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몸이 아파 건강 회복을,3대 독자에게 시집온 우리 며늘아기 자식하나 점지 소원,무왕이 계신 왕궁리로 과거 보러간 낭군님 급제 소원을 염원하고 기도 했던 흔적 입니다. 이 북바위 즉 뜬바위는 모든 소원을 들어 주십니다.
뜬 바위로 올라 갑니다.
혹시 익산님 부서 에서 이 윷판형 도형에 대하여 관할 하거나 연구하시는 연구원은 계시는 지요, 예 저희 부서와 굉장히 연관성이 높군요 하지만 저희도 이런 윷판형 바위 구멍에 대해 분분 하지요
1. 별자리를 함축 해서 도안화 했다. 2. 우리 백제 백성이면 누구나 볼수 있는 북두칠성의 운행을 그려냈다. 3. 태양 만큼이나 신앙의 대상이 절실한것은 없듯이 태양의 상징이다. 4. 지금 왕궁리 궁에 중국 친구 들이 와있는데 중국에서는 원형도형, 십자선 도형 설 이다. 또는 하늘이 내려준 그림책이다. 즉 천서 라 설명 하는 학자 들이 있다고 합니다만 이것을 설계하고 만든 사람만이 표현 하려고 했던 마음을 정확히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말씀을 하십니다. 이 그림은 북두칠성의 운행을 도안화 한 도형 에 공감한다 하면서 설명을 하십니다. 대부분 윷판은 29개의 바위구멍으로 형성이 되어지는데 하나의 바위구멍을 중심으로 4개의 방향에 7개씩의 구멍으로 배치되고 28점의 윷판은 북극성을 중심축으로 해서 돌아가는 북두칠성에서 그 형상을 따와서 도안화 것 이다. 그러므로 이 도형이 내포하고 있는 상징성은 농경과 관련한 계절의 변화가 반영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라고 말씀 하십니다. 즉 천문과 농경이 어우러진 도형 일 것이다. 익산님 말씀에 많은 것을 배움니다. 이 제작자는 하늘의 북두칠성의 위치와 계절의 바뀜이 같은 운행법칙을 갖고 일률적으로 이루어 진다는 사항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많은 것을 말하고 있는 뜬바위를 뒤로 하고 바위 뒤쪽의 능선을 따라 올라 갑니다.
묘를 지나 용화산이 보이는 능선 조망 바위에 도착 합니다. 위쪽 큰바위에 10개 아래쪽 바위에 2개 즉 12개의 크고 작은 성혈이 새겨진 곳입니다. 익산님께 질문을 합니다. 이런 난해한 바위 구멍들을 만든 사람은 누구이며 무엇을 나타낼려고 했을까요
글쎄요 저희도 이런 구멍을 누가 만들었다 보고나 문서나 서적에 기록이 없어 알수가 없네요 이런 구멍을 하나 낼려고 하면 어마 어마한 시간과 정성이 들어 가야 할것같습니다. 아까본 윷판형 바위 구멍과 이곳 바위 구멍은 누구 봐도 차원이 다르다는 느낌이 드네요
뜬바위 윷판형 바위 구멍은 기획에 의해 제작된 작품이라면 이곳 바위 구멍은 하나 하나에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 같습니다.
즉 구멍 하나 하나가 많은 사연과 이야기를 머금고 있는 보따리 같다고나 할까요 참 보면 볼수록 애틋 하게 와 닿는데요 아~ 익산님도 그렇게 생각 하세요
익산님은 천문관측 관계일을 하고 계셔서 혹 천문과 관련은 없는 지요
꼭 별자리다 하늘모습을 이 바위구멍에 담았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구멍 하나하나 가 잘 다듬어진 것으로 봐서는 이 구멍과 인간이 아주 오랜세월 같이 동고 동락 했다는 증거가 되네요
이곳에 도착한 사람은 많은 사연과 이야기 즉 삶 자체를 이 구멍에다 담아 두었고 그러기에 이 구멍들은 지금 현재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익산님의 설명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집니다. 성혈 조망 바위를 뒤로 난간이 설치된 380봉 으로 향합니다.
미륵산 능선 분기점에서 좌측 능선타고 내려 갑니다. 등로 우측 조망 바위가 나오고 위아래 바위에 8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습니다. 등로 가까이 있는 바위는 올라가기 편하게 다듬어 놓은 흔적도 있습니다.
익산님 ! 의미는 그렇더라도 이 바위구멍을 만드는 사람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 이었을 까요...?
정확히는 알수 없는 일이지요 단지 추정을 해볼수 있는 것은 뜬바위에서 보듯이 윷판형 성혈같은 것은 괭장히 전문 지식이 있는 사람의 설계에 의해서 만들어 졌을 것 같구요 이곳에서 볼수 있는 성혈들은 아마 그러 하지 못한 사람들이 만들지 않았을까 추정을 해봅니다.
드디어 난간이 설치된 정상에 도착 합니다. 우뚝한 바위를 주 바위로 우측 바위와 조금 떨어진 좌측 바위에 성혈이 새겨져 있습니다.
좌측 바위에 1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다.
우측 바위에 새겨진 성혈입니다.
우뚝한 주 바위 정상에 무수한 바위구멍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늘과 맞닿아 있는 곳 온천하가 발밑에 펼쳐지는곳 완전한 윷판형은 아니지만 마음속으로 그려보면 큰 바위구멍을 중심으로 원이 그려지는 형태가 됩니다. 익산님이 보시기에 어떠신지요 예 괭장하군요..올라오기도 힘들고 위험 천만한 이곳에 윷판형 바위구멍이라 ... 엄숙해지고 위엄이 느껴지는 분위기가 드네요...말없는 침묵만이 흐릅니다. 익산님이 먼저 말문을 엽니다. 미륵산 정상으로 가시죠..말은 서로 없어도 마음은 서로 통 했을겁니다.
미륵산 정상 오르기전 바위입니다. 미륵산 정상 지킴이님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네요> 이 유명한 바위라 합니다. 일명 똥꼬 바위로 아직도 성별 구별이 안되었답니다.
아마 영원히 알수 없을것 같습니다. 제 추론으론 여자는 남자이기를 남자는 여자이기를 바라지 않을까요
정상 바로 직전 바위에도 2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습니다.
미륵산 정상 돌탑 아래도 성혈이 새겨져 있습니다. 성혈이 많은 미륵산 입니다.
드디어 미륵산 정상에 도착 했습니다. 한반도 호수 모양도 보이고 사방 조망이 트여 온 세상이 한눈입니다.왕궁리 왕궁과 화려한 미륵사는 정말 장관으로 눈앞에 다가 옵니다. 익산님 ! 익산 과 미륵사는 무왕과 선화 왕비에게는 어떠한 것인지요..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익산님 두 눈가에 촉촉히 이슬이 맺힙니다. 우리 무왕 폐하와 선화왕비 에게는 익산과미륵사는 완전히 백제 그 자체이지요 이 미륵사로 인하여 백제인의 정신이 하나로 통일 되고 미륵의 세상이 이곳에서 펼쳐 지기를 소원 하지요 미륵의 세상이란 삼국을 우리 백제가 통일 하는 그 때일 것입니다. 미륵산 정상을 뒤로 하고 심곡사로 발길을 돌립니다.
정상 을 지나 통신탑봉 내려 가는 좌측 바위에 성혈이 새겨져 있습니다. 저두 바위구멍에 돌을 넣어 돌리며 소원을 담아 봅니다. 부디 익산님이 생각 하는 그런 세상이 펼쳐지기를 기원 해 봅니다.
통신탑과 통신탑 사이로 넘어 내려가면 심곡사 입니다.
심곡사 이정표 따라 내려 갑니다.
심곡사 입니다. 미륵산 둘레길을 할때 자세히 보기로 하고 바로 도로 따라 내려 갑니다.
장암 사거리에서 향산 저수지 방향 즉 낭산면 호암리 로 갑니다.
상낭과 하낭을 거쳐 갑니다.
효자비 입니다. 지금도 불효를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뒤돌아 봅니다.
낭산 산성 표지판이 말이 아닙니다. 다음 세대로 물려 줘야할 문화재 알림판 인데 말입니다.
718번 도로와 만나는 삼각점에서 삼기면 방향 즉 미륵사 방향으로 조금 내려 가면 우금 마을 표지석이 나옵니다.
우금마을 표지석이 있는 삼거리에서 우금 마을로 들어 갑니다.
낭산 초등학교 지나 아래뜸 범바위 마을를 가로 질러 넘어 갑니다.
범바위 마을을 넘어 가면 넓은 평야가 펼쳐 지고 좌측으로 멀리 보이는 동산이 범산 입니다. 저 자그마한 동산 속에는 엄청난 세월을 머금은 세상이 펼쳐지는 곳입니다.
일단 범산 정상에 도착 합니다. 묘가 대부분인 범산 정상,공적비 리기문의묘 라는 비석이 새겨진 묘 바로 앞 정 남쪽 방향의 조망 바위에는 4개의 윷판형 바위 그림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앞쪽으론 임금 王 자가 새겨져 있고 우측 모서리 방향으로 3개의 성혈이 있고 바로 2개의 윷판 도형 흔적이 눈에 들어 옵니다. 오랜 세월 마모로 인해 판독 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일부는 확인이 어렵지만 윷판형 바위그림이 그려집니다. 앞으로는 드넓은 평야가 펼쳐지는 곡창지대 입니다.
왕자가 새겨진 조망바위 오른쪽 너럭 바위에도 위아래 2곳의 윷판형 그림이 있었던 흔적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습니다. 익산님이 보시기에 이곳의 윷판 도형의 의미는 어떠하신지요..예 완전한 윷판형 그림이 아니라서 단정 하지는 못하겠지만 뜬바위에서 말씀 드렸다 시피 천문적 요소에 이 곡창 지대 농경의 계절변화의 관계가 깊지 않을 까요..미륵사지를 출발 뜬바위에서 시작된 성혈이 만들어낸 이야기 따라 이곳 범산까지 왔습니다. 바위구멍 이야기는 전문가들에 의해 많은 연구가 시작 되고 있어 앞으로 더욱 윷판형 바위 그림에 내재한 또 다른 성격과 상징형태가 밝혀 지리라 믿습니다.
이제 부터는 또 다른 무한의 세상을 여는 바위그림 <巖刻畵> 세상으로 여러분을 초대 합니다. 이 범산은 고대의 천문가 수학자 예술가가 펼쳐 놓은 공연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곳입니다. 새로운 눈이 떠지는 세상으로 안내를 합니다. 사진속의 좌측 바위가 첫번째 안내 할 곳입니다.
과거로의 세상 이야기는 범산의 북서쪽 끝자락 부터 시작됩니다. 앞으로는 광활한 평야가 펼쳐지고 뒤돌아 보면 묘 한기와 그 뒤로 잘 조성된 3개의 묘가 있는 입구 좌측 너럭 바위가 바위그림의 서막이 시작 되는 곳입니다.
보이십니까 기괴한 모향의 도형들이...
이너럭 바위는 북 서쪽 방향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익산님이 보시기에 어떠 하신지요 예~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뭐라 답해 드려야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백제 시대 이전의 세상 이야기라 저두 배우는 입장서 바라 보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감상 해 보시죠
ohmy news에 2005년 1월 20일 익산 고적연구회에서 발표한 기사 내용을 나열해 나가겠습니다.
전북 익산시 낭산면 호암리 범산에서 전국 최초로 청동기 시대 유적으로 추정되는 암각문자 발견
고조선 시대의 산목문자를 처음으로 언급,익산고적연구회의 발굴로 문자연구에 획기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학술적 사업으로 금석학 연구에 새로운 좌표를 세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번 암각문자는 고조선 시대의 산목문자를 근거로 작성되어 있으며 조각수법에서도 두드러진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천(千), 금(金), 정(丁), 목(木)등의 글자가 새겨져 있고 좌측면에는 일천 천(千)자가 새겨져 있다. 암석의 재료는 화강암으로 풍화작용에 의한 마모가 있으며 문자의 형태는 식별할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오늘날 문자와는 차이가 있어 해독이 어렵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 고조선 시대의 산목문자로 수를 셀 때 나무토막을 형상화한 숫자를 표기한 문자로 보고 있다.
ⓒ2005 익산고적연구회
이것으로 첫번째 암각화는 막을 내리고 정상으로 올라가 윷판형 바위그림이 있는 조망 바위 아래로 내려 가면서 다시 암각화 이야기는 시작 됩니다.
조망 바위 좌측 바위에 6개의 성혈이 새겨진 바위 입니다. 위에 3개 옆면에 3개의 성혈이 새겨저 있습니다.
임금왕자가 새겨지고 윷판형 도형이 새겨진 바위 아래에 표기된 문자 입니다. 산목문자는 수를 셀 때 나무토막을 형상화한 숫자를 표기한 문자로 1부터 10까지를 나타내고 있고 이 문자는 한눈에도 알아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8자이며 문자 위에 점이 찍혀 있고 청동기 시대 유적으로 추정된다.
자연 형태의 상태에서 약간의 인위적 조각을 가하므로써 전채의 그림이 완성된 차원높은 예술품이라 할수 있습니다. 입모양은 자연 그대로입니다.
문자가 아닌 호랑이 얼굴의 눈과 코가 새겨져 있는데 이 문양은 이 산을 범산이라 불리게 된 배경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입을 벌리고 있는 형상은 자연 그대로의 바위로 입안은 연푸른 이끼가 있고 눈과 코는 인위적으로 만들어 한 눈에 호랑이의 얼굴임을 알 수 있다. "호랑이 바위는 선사인들에게 수호신의 역할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한다"며 "간과할 수 없는 부분으로는 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과 연관된 단군신화에 호랑이가 등장하고 있고 외래 종교인 불교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삼신각 안에도 호랑이가 있으며 민화에도 호랑이가 널리 그려지고 있다"고 보충 설명했다.
7개의 성혈이 새겨진 바위입니다
임금왕자가 새겨진 조망 바위 아래서 잘 보면 보이는 바위 입니다.
상(上), 정(正), 명(明)의 글자와 피라미드 모양이나 사각뿔처럼 생긴 바위에 빼곡이 문자가 새겨져 있으며 중앙에는 이곳 암각문자 중 가장 크고 깊이 새겨진 글자가 남쪽을 향하고 있다.
마지막 바위 입니다. 바위 전체가 암각화 되어 있습니다. 바위 정 중앙 위에는 멋진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十자와 ≠, 州, 世, 之, 井, 正 등이 새겨져 있으며 바를 정(正)자는 정벌 정의 옛글자로 쓰였던 예가 있어 정벌을 의미하는 글자가 아닌가 하며 바를 정자 위의 점들은 종족의 전진을 의미하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다.또한 井자는 9개로 나눠진 밭으로 가운데 부분은 백성들이 경작해 얻은 곡식을 임금님께 받친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범산의 암각문자 유적은 千, 明, 金, 世 등 몇 자를 제외하면 해독할 수 없는 여러 형태의 문자로 음각 되어 있으나 이러한 암각문자에 대한 선행 연구는 국내외 어느 곳에서도 전무한 상태여서 비교할 수 없었고 암각문자만 보고 연대를 측정하기란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암각화는 인류문화를 시작하는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는 유적이지만 호암리의 유적은 단순 부호나 기호 과정을 거쳐 문자로 가는 길목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호암리 암각문자는 상형문자나 중국의 갑골문자, 청동기에 나타나는 도철문양보다는 회화적인 것이 거의 없는 문자의 구조적인 문자이기에 발전된 문자로 보고 있다.
잘 감상 하셨습니까. 세상에는 나도 모르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 지는 것에 놀란 발걸음 이었습니다. 마지막 바위로 올라 갑니다. 둥근 바위에 정중앙을 파내어 다듬었습니다. 처음엔 물길을 내놓았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역으로 봐서 이상한 동물이다. 생각 했습니다. 뭘까 과연 어떤 동물을 표현 하려 했을까 지금까지 돌아 보면서 제가 알수 있었던 것은 몇개의 한문자 뿐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분필로 도형을 그리고 반대로 돌아 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앗~~~~!!!!!!!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보셨습니까 거북 모양 입니다. 우리가 생각 하는 거북의 등 모습은 위로 나온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곳의 거북등은 역으로 파내었습니다. 헤엄치는 다리 모습은 자연 물빠짐 역활의 기능도 하게 만들었습니다. 역설적 이게도 위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넓은 대양을 헤엄치는 아름다운 거북 모습으로 펼쳐지니 내 자신도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표현 할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한마리의 거북이 넓은 우주 공간을 헤엄치는 순간의 모습을 이 바위 위에서 보았습니다. 조그마한 둥근 바위 위에서 거대한 세상으로 헤엄 쳐 나가는 아름다운 거북을 보면서 바위 그림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익산님은 마지막 으로 이 암각화를 보고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요
예~ 이 범산의 암각화는 역사적 문화적 자료 가치가 높지 않은 것인지 너무 무심하게 방치 되어지는 것이 무척 안타가왔습니다. 바위 재질을 보면 사암 이라고 해야 될까요 조금만 힘을 주어도 부서짐이 매우 심합니다. 조금 더 세월이 지나면 이 아름다운 모습을 볼수 없을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무왕폐하를 알현 하고 최소한의 보호막 설치 라도 요청해야 될것 같습니다.
위의 윷판형 바위그림 이야기는 한국선사미술연구소 이하우 소장님 논문집을 참고로 작성 하였습니다.
암각화는 익산고적연구회가 언론에 발표한 기사내용을 참고로 작성 하였습니다.
백제의 먼 과거에서 현재의 문앞까지 어려운 발걸음을 동행해준 익산님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현행님,맑을숙님 멋진 여행 같이 떠날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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