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성혈 여행과 이야기

바위구멍(性穴)여행(적오산)

느낌표!! 2013. 12. 30. 19:06


바위구멍(性穴)여행(적오산)


*코스 : 북대전나들목만남의광장-적오산-전자고등학교-만남의광장

*날짜2013년12월28일

*거리 : 약 3km 

*시간 : 약2시간 

*교통편:승용차,북대전나들목만남의광장 시내버스,704 918 번 버스

 

적오산(赤鰲山 255m), 호남고속도로 북대전 나들목을 나오면서 정면으로 보이는 산으로 붉은자라 모양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산이다.  정상에 오르면 이끼와 더불어 오랜 세월 지켜 온 성벽 고색에 나도 모르게 탄성이 절로 나오는 곳이다. 작지만 사시사철 샘솟는 우물을 볼 수 있으며, 말바위 정상에서는 무명 시인이 남긴 시도 감상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바위구멍도 함께 있어 그 속에 담긴 소망과 기원을 생각해 보며 성벽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오면 좋은 곳이다.


적오산성 바위구멍은 호남고속도로 북대전 나들목 만남의 광장에서 출발 한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통신탑이 있는 적오산 이기도 하지만 태극기가 휘날리는 저곳은 어디지 하는 의문이 드는 곳이다. 우리나라 원자력의 산실인 원자력 연구원이 있는 곳이다. 적오산 들머리는 찾기가 쉽다. 아주 미술관 가는 길 따라 올라 가면된다.


꿈,가치,행복을 실현하는 미술관으로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와 장르를 아우룬 작품들을 수집 ,전시 함으로써 대전을 대표하는 문화중심지로 한국의 문화와 예술을 널리 알리는데 힘쓰고 있는 아주 미술관, 대전에서는 보기 드문 사립 미술관이다.


아주 미술관 입구를 지나 이정표 따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올라가도 30분이면 정상에 올라간다.

정상에는 폐 초소가 있고 조망은 좋은 편이다. 건너편으로 돌탑이 보이는데 말 바위다. 이곳 에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옛날 적오산 꼭대기에는 무쇠로 만든 말이 바위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이 무쇠로 만들어진 말의 머리를 덕진마을 쪽으로 놓으면 호랑이가 덕진마을의 개를 물어가고, 반대쪽으로 머리를 놓으면 방현마을의 개를 물어갔다고 한다. 현재는 무쇠로 만들어진 말은 없어졌지만 바위만이 옛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말 바위에는 금석문 한시가 각자되어 있는 것이 더 이채롭다. 돌탑 서쪽 방향 밑으로 둥글게 파여진 자연 바위면에 새겨졌는데 작자 미상이다. 한번 감상 해보시기 바랍니다.


赤鰲隨溪 芳里春風

靑柳連城 係馬於枝


 

<적오수계><방리춘풍>

<청류연성><계마어지>


 

적오산 계곡 따라

방현 마을엔 봄바람이 불어오고

푸른 버드나무는 성을 따라 줄지어 섰는데

말은 나무 가지에 매어있구나


봄 내음이 물씬 풍겨 나는 것 같다. 


산성 북벽으로 내려가면 고색창연한 성벽이 펼쳐 진다. 성돌 하나하나 에는 오랜 세월 버텨온 흔적 과 , 이끼 낀 고색의 아름다움에 한동안 발걸음이 움직여지질 않는다.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결과라 생각 하니 애잖한 아름다움이 더해진다. 



자꾸 눈길이 머물러져 발길이 떨어지지 않음을 뒤로 하고 되돌아 올라와 운동 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곳에 다다르면 운동시설 가운데 둥그런 바위가 보인다. 오늘 찾아보고자 했던 목적지 이다. 앞으로는  성혈(性穴)에서 바위구멍으로 명칭을 변경 사용하기로 하였다. 


2014년1월7일 (사)문화유산울림 성혈연구모임에서 포항 칠포리 암각화와 신흥리 오줌바위 답사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우리나라 암각화의 선구자 이신 한국선사미술연구소 이하우 소장님께서 지금 사용하고 있는 성혈(性穴)은 개념에 맞지 않는다고 하였다. 현재는 바위구멍도 많이 발견되고, 개념 면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발견되기 때문에 하나의 성혈(性穴)로 표기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였다. 바위구멍도 하나의 바위 문화로서 그 개념에 맞게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맞는 다고 하였다. 즉 별자리형 바위구멍, 기원형 바위구멍, 다산형 바위구멍등 실지로 신흥리 오줌바위에서는 카시오페아 자리, 북극성, 윷판형 바위구멍등 별자리와 관계되는 바위구멍들이었다. 그리하여 (사)대전문화유산울림 성혈연구모임에서 바위구멍 연구모임으로 변경하고 명칭도 성혈(性穴)에서 바위구멍으로 변경 사용하기로 하였다.


크지 않은 125 cm x 100 cm 크기의 아담한 바위위에 8개의 구멍이 만들어져 있다. 바위구멍의 정의는 신앙적 기원이 담긴 다산과 풍요 그리고 태양숭배 별자리등 다양한 형태의 개념으로  표현 한다. 이곳 적오산성 안에 만들어진 8개의 바위구멍은 어떤 사연을 담아 새겼을까

 

백제가 신라에 의해 멸망 되었지만 다시 백제를 되찾기 위해 큰 전투에 참석하였다가 장열이 전사한 맹구 아버지의 슬픈 이야기, 적오산성을 지키기 위해 보초를 서다 적군에 기습을 당해 아까운 생명을 잃었다는 박씨 아주머니 남편 이야기, 마지막 돌격 부대에 자원하여 선두에 섰다가 적군의 칼에 팔이 잘리는 큰 부상을 당한 강씨 맏아들의 안타가운 이야기가 8개의 구멍구멍 마다 담겨 있는 것은 아닐런지. 허구로 이야기를 만들어 보았지만 바위구멍에 담겨졌던 사연과 함께 산성은 허물어지고 백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적오산성 바위구멍은 말없이 운동을 위해 오고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다.

 


성벽 둘레을 따라 남쪽 방향으로 내려가면 산성우물에 도착한다. 네모형으로 제단이 쌓아져 있고 우물은 둥근 형태로 돌를 쌓아 만들어 졌는데 많은 수량은 아니 지만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이 작은 우물이 전쟁시에는 많은 사람들을 살려내는 생명수 역활을 톡톡히 해냈을 것이다. 한때는 아주 귀하게 쓰여졌던 우물이지만 지금은 이곳에 우물이 있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산성 우물 아래 큰 나무가 성돌을 안고 넘어진 남쪽 벽면에도 온전하게 보존된 성벽이 남아 있다. 한돌 한돌 차곡차곡 들여가면서 쌓았다. 그래도 무너진 성벽을 보면 세월 무상함을 느낀다. 



다시 성벽을 따라 올라가면 폐 초소가 보이고 산성 안내판 쪽으로 내려간다. 대전시 기념물 제13호 적오산성, 백제시대 산성임을 알리는 안내판을 읽어 보고 전자고등학교 이정표 방향으로 발길을 잡는다. 이정표에서 10 여분 내려오면 좌측으로 예전 채석장으로 쓰여 졌던 장소가 나오고 우측 방향에 아담한 돌 장승이 서 있다. 눈꼬리가 양옆으로 올라간 근엄한 얼굴형 이면서도 너그러움과 편안함이 잘 표현된 장승이다. 방현 마을 애환을 함께 했고 앞으로도 함께 할 수호신을 뒤로 하고 전자 고등학교 방향으로 내려간다. 전자고등학교 옆으로 해서 짬봉이 맛있기로 소문난 손 짜장집 앞를 지나면 의류판매점 건물이 그 옆으로 있다. 



우측을 보면 조경석으로 쓸 큰 돌들을 갇다 놓았는데 중간 큰 바위면에 2개의 구멍이 새겨져 있다. 적오산성 구멍과는 어딘지 모르게 다르게 느껴지는 구멍이다. 이동이 되어진 점과 기계적 힘으로 만들어논 구멍 같기도 하다.  적오산성 구멍 과 이곳 구멍을 비교 해 보면 가슴으로 와 닿는 감정이 다르다. 그래서 이것또한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것 같다. 다시 원점 만남의 광장에 도착 했다 이곳에서 나들이를 마치고 묵집으로 유명한 솔밭묵집에서 보리밥에묵을 곁들인 점심을 해결 하면 금상첨화 여행이 따로 없다. 마지막으로 어느 산꾼이 성혈(性穴)를 노래한 시가 있어 감상해 보며 적오산성 바위구멍 여행을 모두 마친다. 


성혈(性穴) 


              거산매


 

오래 전

옛 선인의 꿈

비바람 모진 세월 이기고

수 천년 세월지나

수 만년 흘러도

오롯이 전해지는

삶의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