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성혈 여행과 이야기

성혈 여행(대전문화타임즈기사내용)

느낌표!! 2014. 1. 5. 21:07


 > 즐길거리 > 여행
<대전재발견>대전의 성혈(바위구멍)과 성혈여행기자신앙적 형태와 풍요 형태의 선사시대부터 내려온 문화유산, '대동윷판형성혈' 등 대전의 대표 성혈
이창남(성혈여행가)  |  chnam9905@hanmail.net
폰트키우기폰트줄이기프린트하기메일보내기신고하기
승인 2013.12.31  10:36:13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네이버구글msn

성혈(性穴)이란 돌의 표면에 홈처럼 파여진 구멍, 즉 바위구멍을 말한다. 주로 고인돌(支石墓)의 덮개돌(上石)이나 자연바위에 새겨 지는데 때로는 성돌, 탑, 선돌, 비대석 등에도 새긴 것을 볼 수가 있다. 형태적 차이는 있지만 별구멍(星穴), 알구멍, 알바위, 알터, cup-mark 등으로도 불린다.

성혈을 처음으로 만들기 시작한 시기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고인돌 위에서 많은 성혈들이 발견 되는 것으로 보아 고인돌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선사시대, 즉 청동기시대부터 만들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성혈은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유럽,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등 세계 각지에서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세계 공통의 문화유산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

성혈의 의미에 대해서는 주로 형태적 특징과 제작 방법 그리고 만들어진 곳의 입지를 통해 추론된다. 구멍-여성의 성기-마찰-생산으로 이어지는 기자신앙(祈子信仰)적 형태와 구멍-알-곡식-생산으로 이어지는 풍요의 형태로 나타난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신앙적 기원 의식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발전된 성혈 형태로 별자리나 회화적인 그림 형식을 띠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윷판모양의 윷판형 성혈이다. 대전에서도 얼마 전 동구 대동 하늘공원 부근에서 대동 윷판형 성혈 3점이 발견되었다.

성혈은 선사시대부터 우리의 할아버지 세대에도 만들었다 하니 그 세대를 면면이 이어온 역사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한다. 문화라는 것이 발전되고 퇴화되어지는데 반해 성혈 문화는 형태적 차이는 있으나 변치 않은 형태로 수 천 년을 같은 모양으로 이어졌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어느 시대에 누가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는지 정확한 문헌이나 자료가 전해지지 않아 정확한 제작 시기, 목적을 알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다만 형태적 특징과 제작 방법, 만들어진 곳의 입지, 모양 등을 바탕으로 연구 추론 할 뿐이다. 하나의 성혈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최신 도구와 기계적 장비 없이 돌 하나만으로 성혈을 새기려면 그 간절함과 절실함 그리고 오랜 시간과 정성이 없이는 만들 수 없는 것이 성혈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성혈에는 많은 이야기와 사연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대전의 성혈여행 코스를 개발하고 관심 있는 시민들과 성혈여행을 수차례 진행했었다. 이번 기고에서는 시민들에게 대전 성혈 여행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코스를 안내하려 한다. 
대전문화타임즈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코스는 전민동 '김반 신도비 성혈'부터 시작한다. 찾아 가는 길은 전민동 네거리에서 북대전 나들목 방향으로 전민동주민센터 앞을 지나 전민제일교회 뒤편으로 가면 정려각과 신도비가 있다. 이번 성혈여행의 이야기는 '김반신도비'가 있는 곳에서 서포 김만중의 가족사와 함께 풀어 가보고자 한다. 

서포 김만중은 조선시대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의 작가로 너무나 유명한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는 김익겸, 할아버지는 김반, 때는 병자호란 당시 1637년 2월 22일 강화성이 함락되자 적에게 유린당하지 않고 충의를 지키기 위해 서포의 아버지 김익겸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때 김익겸의 어머니이자 서포 김만중의 할머니도 함께 목숨을 끊는다. 아들이 지키고자 했던 그 길을 어머니란 이름으로 그 충절을 이어 간 것이다. 그 어찌 위대 하지 않다 하리요.

  
 

이제 성혈을 찾아보자. '김반 신도비' 비대석에는 앞쪽에 3개, 뒤쪽으로 4개, 총 7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다. 성혈 바위를 비대석으로 사용하였는지 아니면 신도비가 세워진 다음 성혈이 만들어 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추론을 해보면 구멍 숭숭난 돌로 신도비 받침돌로 세우지 않았을 것이란 가정을 하면 신도비가 세워진 이후 성혈이 새겨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뒤쪽 3개의 성혈은 상당이 큰 편이다. 병자호란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겠는가? 어찌 서포의 아버지와 할머니만 그러하였겠는가? 이 7개의 성혈은 병자호란 뒤에 더 많은 우리네 할머니와 어머니들이 애 닳은 삶을 보여주는 흔적이라 생각한다. 어찌 역사로만 그 이야기가 증명 되겠는가. 아마도 이 7개의 구멍은 그 보다 더 많은 애달픈 우리네 민초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을지 모른다. 

  
 

이제 신도비를 뒤로하고 김반·김익겸의 묘역을 둘러 본 다음 화봉산 장수바위 성혈로 발길을 옮긴다. 김반·김익겸의 묘역을 되돌아 나와 푸른 아파트 113동 옆 등산로로 화봉산을 오른다. 정상에는 폐 초소가 있는데 지금은 휴게소를 만들어 놓았다. 초소 안에는 시가 한편 걸려 있다. 여기서 도룡정 방향으로 10분 정도 내려가면 장수바위에 도착한다. 좌측으론 계족산이, 우측으론 멀리 계룡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이 시원한 곳이다. 양쪽 조망을 한눈에 즐길 수 있는 곳으로, 해돋는 계족산과 노을이 지면 아주 멋진 계룡산이 연출 되는 곳이다. 우측 평평한 바위에 4개, 정면 바위에 17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다. 17개의 성혈이 새겨진 바위는 사암으로 마모가 심하게 진행 중이다. 아마도 '화봉산 장수바위 성혈' 볼 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서포 김만중의 아버지가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할 당시 나이는 23세의 젊은 나이였다. 그 당시 어머니는 21세에 그만 청상과부가 되고 말았다. 여기 화봉산 장수바위 성혈도 험난한 세상을 오로지 홀로 헤쳐 나갔던 우리네 어머니들의 한 많은 사연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이제 '우성이산 성혈'로 향해보자.

  
 

우성이산 정상 도룡정을 거쳐 MBC방송국 방향으로 20여 분 내려가면 전망 좋은 조망바위가 나오는데 이곳이 '우성이산 성혈'이 있는 곳이다. 높지는 않지만 참 눈 맛이 기가 막힌 곳이다. 멀리 대전 시내가 광활하게 펼쳐지고 눈앞으론 장대한 갑천이 흐르고 뒤에는 병풍 같은 우성이산이 둘러 쳐져 있는 곳이다.

1637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21세 젊은 나이에 그만 과부가 되었지만 5세였던 형 만기와 아직 뱃속에 있던 서포까지 아들 두 명을 조선의 선비로 훌륭히 길러 내었다. 여기에 2개의 성혈은 모진 역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식들을 위해 한평생 몸 바쳐 훌륭히 키운 우리네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당산배바위성혈'로 발길을 잡는다. MBC방송국 뒤쪽으로 내려와 솔로몬파크 앞을 지나 숭현서원을 둘러보고 원촌교를 건너 주유소 뒤편의 '당산배바위성혈'에 도착한다. 배바위까지 약 30분 이상 걸어야 갈 수 있다. 지금은 도로와 집들로 인해 조망이 가려졌지만 예전에는 배바위 앞이 나루터였고, 성혈이 있는 배바위 밑으로 갑천이 흘렀다고 한다. 높이는 낮지만 건물이 주변에 없었다면 아주 조망이 좋은 곳이다. 이곳에는 작은 바위에 9개, 넓은 쪽 바위에 15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다. 특이 한 것은 열십자형으로 홈이 파여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서포 김만중은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의 증손이요, 김익겸의 유복자로, 광성부원군 김만기의 아우로 대제학까지 올랐으나 그의 말년은 유배지 남해의 노도(櫓島)에서 56세 일기로 기구한 생을 마쳤다. 서포의 가족사에서 할아버지 김반은 젊은 아들을 잃어야 했고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순절하고 어머니는 어린 나이에 청상과부가 되어 두 형제를 길러야 했다. 어찌 서포 김만중의 가족사만 그러 했겠는가, 여기 24개의 성혈은 아마도 그에 못지않은 우리네 선조들의 애절한 가족사의 이야기가 담겨 있을 지도 모른다.

대전에는 현재까지 35곳 64지점에서 700여개의 성혈이 발견되었다. 윷판형 성혈 3점, 고인돌에 5곳, 비석 비대석에 2곳 나머지는 자연바위에 새겨 졌는데 이렇게 자연바위에 많은 성혈들이 정식 보고되기는 대전이 처음이지 아닐까 생각된다.

그 중에서도 대전의 대표 성혈을 꼽으라면 자운대 골프장 안에 있는 '추목동고인돌성혈', 계족산 정상에 있는 '계족산성혈', 계족산성 남문지 아래에 있는 '계족산성성혈', 대동 하늘공원에 있는 '대동윷판형성혈' 등 4곳은 꼭 가봐야 할  대전의 대표 성혈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관심을 갖고 위 4곳의 성혈을 보고 나면 성혈(바위구멍)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어느 시기에 누가 무슨 목적으로 성혈을 새겼는지 문헌 자료가 없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성혈 하나하나에는 많은 사람과 오랜 시간을 더해 많은 사연과 이야기가 담겨져 있기에 우리가 관심을 갖고 보존하고 후손들에게 물려 줘야할 민초들이 남긴 소중한 문화유산이라 생각한다.


대전 성혈여행 추천코스
- 걷는 거리 : 약 8.5km
- 시간 : 약 3시간
전민동김반신도비성혈- 김반김익겸의묘- 화봉산 정상- 화봉산장수바위성혈- 도룡정- 우성이산성혈-숭현서원-당산배바위성혈

  
▲ 이창남

이창남
-53세, 성혈여행가
- (사)대전문화유산울림 성혈연구모임 연구위원
- 현 리베라호텔산악회 산악회장
- 전 대전둘레산길잇기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