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성혈 여행과 이야기

바위구멍 여행 (계족산 자락따라)

느낌표!! 2014. 1. 9. 22:02

대전의 바위구멍 역사가 이곳에서 이루어 지다.


 

이번 여행은 원점 여행으로 동춘당 공원부터 시작 한다. 동춘당 공원은 조선 효종 때 대사헌,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지낸 동춘당(同春堂) 송준길 선생의 별당(別堂),즉 동춘당이 있는 곳이다. "살아 움직이는 봄과 같아라" 뜻의 동춘당은 그의 호를 따서 지은 것으로 이곳에 걸린 현판은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것이다. 이곳 동춘당은 대전의 대표 문화재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또한 계족산 을 중심으로 많은 문화재도 산재해 있다. 그러기에 계족산 따라 많은 바위구멍들이 형성되어진것도 우연만은 아닌것 같다. 대전의 많은 바위구멍 군 에서도 대표적 바위구멍이 있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문화유산 길 따라 대전의 바위구멍 이야기도 함께 풀어 가 보고자 한다.



동춘당을 중심으로 좌측으론 시 유형문화재 제3호 동춘선생 고택(同春先生 古宅) 이, 우측으로는 시 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된 송용억 가옥(宋容億 家屋) 이 자리 잡고 있다.아파트 단지로 둘러쌓인 도심 속의 공원 이지만 삭막함 속에서도 허파 같은 기능 과 오아시스 같은, 도시민들의 갈증을 해소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곳이다. 따뜻한 햇볕과 함께 오래된 팽나무와 소나무가 동춘당 건물의 운치를 더해 주고 있다.송용억 가옥 앞 을 지나고 선비마을 4,5단지 사이를 돌아 고속도로 지하통로를 지나면 두 구루의 느티나무가 마을 지킴이 역활을 하고있는 비래골이 나온다. 양쪽 계곡을 사이에 두고 마을 앞쪽으로 논과 밭이 형성된 마을로 입구 밭둑에 2기의 고인돌이 자리 잡고 있다.


선사시대의 거석기념물 중의 하나인 고인돌은 대부분 무덤으로 쓰이고 있지만 공동무덤을 상징하는 표식으로,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기념물)으로 사용되는 것도 있다. 우리나라 에서는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무덤으로 선돌과 함께 거석기념물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고인돌 유적은 전 세계에 고루 분포해 있는데, 그 중 60%에 이르는 3만 여기의 고인돌이 우리나라에 밀집해 있다. 특히 선사시대 조상들이 남겨 놓은 고창, 화순, 강화 지석묘는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대전시 기념물 제33호로 지정된 비래동 고인돌 은 1,2호기로 나뉘어 져 있는데, 1호기에는 32개, 2호기에는 21개의 구멍이 새겨져 있다. 53개나 되는 구멍의 의미는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 2004년 대전둘레산길을 이어 가면서 인연이 된 지금의 (사)문화유산울림의 안여종 대표님을 만나 대전에도 고인돌이 있다는 것을 이 비래동 고인돌에서 처음으로 알았다. 그리고 2개의 고인돌 위에 새겨진 구멍이 하늘 별자리 내지는 신앙적 기원이 담긴 바위구멍이라는 것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53개나 되는 구멍들을 보면서 신기 하면서도 얼마나 간절했으면 저렇게 단단한 바위가 닳고 닳아 구멍이 만들어 졌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자리를 떠날 줄을 몰랐던 기억이 생생한 곳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2005년 1월 23일 바위구멍이란 테마를 가지고 계족산, 우성이산, 적오산, 금병산 까지 바위구멍을 찾아 이어간 산행 도 이곳에서 출발 하게 된다. 나에게는 이 비래동 고인돌이 참 의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정자 나무쪽 계곡 길 따라 올라 가면서 여러 개의 바위구멍이 존재한다. 고인돌을 제외하고도 이 비래골 안에 8점의 바위구멍이 존재 한다. 농담 이지만 비래골은 "바위구멍 마을" 이라고 까지 했다. 그 만큼 다양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개울 축대용, 장독대용, 주택 기단돌, 담장돌, 심지어 마당바위에서도 발견 되었다. 그중 재미있는 2곳만 설명을 하자면 먼저 주택 기단돌로 사용한 바위구멍이다. 경사진 곳에서도 여즘은 이쁘게 집들을 잘 짓고 있다. 큼직한 바위들을 쌓고 그 사이 사이 꽃나무를 심은 다음 그 위에 집을 지으면 운치있는 집이 완성 된다. 그 기단돌 중에 바위구멍이 있으니 깜짝 놀랄 일이다. 아마 고인돌로 사용되었던 돌 일 수도 있지만 그 나마 다행인것은 사람이 보이는 쪽으로 뉘었다는 것이다. 40여개의 구멍이 새겨져 있는데 세상에 대하여 아직도 할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다음은 비래골길 86 앞에 있는 너럭 바위다. 길가 돌담으로 일부는 가려져 있지만 선명한 바위구멍 8개가 새겨져 있다. 산에 자주 다니기에 산동료들이 자주 묻곤 했다. 바위구멍에 무슨 매력이 있기에 그 토록 찾아 다니느냐고, 목적과 새긴 사람은 모르지만 바위구멍 속에는 우리가 바라는 작은 소망들이 다 담겨 있다고 대답을 하곤 했다. 성스럽고 귀하게 여겨 위함을 받았던 위치에서 지금은 시대가 변하여 아는 이 하나 없는 그져 평범한 바위로 남아 있다. 선조들의 애환이 담겨 있는 유산임에도 방치되어 지는 것에 안타가움을 느끼며 동춘당 생애길 따라 계족산으로 발길을 잡는다. 




조그마한 개울 다리를 건너면 좌측 정면으로 암반이 보이는데 초연물외 란 각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초연물외(超然物外) <세상의 물질 밖으로 초연히 뛰어나게 하라> 세상 살아 가면서 물욕에 눈이 어두울때가 어디 한두번이 겠는가, 동춘당 송준길 선생 글씨로 참 어려운 이야기다, 눈을 들으면 옥류각 이다. 조선 숙종때 예조판서였던 제월당 송규렴(1630~1709)선생이 숙종19년에 세운 누각이다. 송준길이 읊은 시 가운데 “층층 바위에 날리는 옥 같은 물방울”이란 시구를 따서 건물 이름으로 삼았다. 옥류각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과 잘 어울린다 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개울을 변형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순응한 모습이 아름답다. 



정자는 건물 자체보다 거기서 내다보는 전망이 더 중요하고,더 아름답다 했다. 옥류각 밑으로 흐르는 개울 물 소리가 마음 맑게 하고 고목옆으로 떨어지는 폭포수는 눈을 즐겁게 만들고 멀리 아련한 송촌 풍경은 탄성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비래사 바로 밑에 있는 옥류각을 뒤로 하고 절고개로 향한다. 예전 비래사 절로 넘어 가는 고개라 절 고개가된 고개, 이정표 방향 계족산성으로 향한다. 산성둘레길과 산성은 복원 중이다. 복원된 산성우물은 밑에서 부터 위로 넓어지면서 남쪽은 사각형 북쪽은 둥글게 쌓아 올려 아름답게 복원이 되었다. 계족산성 사진중 이 우물은 꼭 나오는 곳이다.



대전시 사적 제355호 계족산성(鷄足山城) 대전지역에 소재 한 30여 개소의 산성 중에 가장 규모가 큰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계족산성은 백제가 망한 직후 백제부흥군들이 신라군 에 의해 수 천 명이 사살 당하는 백제 민초들의 넋이 깃든 중요한 유적이다.


어찌 산성에만 민초들의 넋이 깃들었 겠는가 산성 남문지 아래 볓이 잘 드는 경사지 바위에도 많은 역사적 사건을 지켜봤던 바위구멍이 있다. 계족산성 바위구멍은 2011년 5월 20일 3번째 바위구멍 테마 산행을 하며 처음으로 보았는데 많은 바위구멍 수에 놀랐던 곳이다. 대전의 자연 암반위에 이렇게 많은 구멍이 새겨진 것은 이곳이 대표적이다.그 이후 8개월이 지난 2012년 2월 15일 계족산성 답사를 마치고 내려오다 이 곳을 한 사람이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이 역사적 사건이 대전의 바위구멍 문화판도가 바뀌게 된다. 일명 가보자 보문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이광섭님이다. 계족산성 바위구멍을 본 이후 불 같은 열정을 쏟아 2013년11월 대전 문화유산 답사기 <성혈편>편이 출간 되어 대전의 바위구멍문화가 수면위로 떠오르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계족산성 바위구멍은 새로운 대전의 성혈<바위구멍> 역사가 이루어진 곳이다.




산성과 우물지을 둘러 보고 봉황정이 아련히 보이는 계족산으로 발길을 잡는다. 임도 삼거리를 거쳐 묘가 있는 정상에 도착 하면 계족산 정상이다. 사방 조망이 좋은 곳으로 가슴 후련하게 만든다. 이곳 정상에 바위구멍이 있다. 묘가 있고 정면 바위에 3개의 구멍이 새겨져 있다. 반듯한 바위에 약 15도 기울기로 같은 간격을 두고 딱 3개을 새겨 놓았다. 첫째 간결함이 돋보이고 둘째 상징성이 뚜렸이 각인 되는 곳이다. 하늘 별자리 삼태성이 번듯 머리에 그려지며 많은 것을 생각 하게 하는 곳이다. 2005년1월 첫 바위구멍 산행시 신샘,최성일 형님과 동행 하였는데 성일 형님이 계족산 바위구멍을 바라보는 모습은 지금까지 나에게 최고의 작품으로 남아있다.





바로 옆 봉황정에 가면 대전시내가 한눈에 들어 온다. 시 중심가 에서도 이 봉황정이 보일 정도이니 조망지로 대전에서 몇째 안가는 곳이다. 잠시 머리를 식히고 마지막 답사지로 내려 간다. 봉황정에서 영화사 방향으로 내려가 봉황마당에서 우측 영화사 뒷편에 자리 잡고 있는 촛대 바위로 간다. 일명 촛대바위구멍이다. 촛불이 켜지는 장소는 기도와 기원의 장소이다. 이곳 바위구멍도 그 뜻이 담겨 있는것은 아닐런지... 




촛대바위 구멍을 뒤로 하고 매봉골 이정표 따라 내려가면 법동 소류지에 도착 하게 된다. 이곳이 마지막 매봉골 바위구멍이 있는 곳이다. 소류지 위쪽 정자와 화장실이 있는 곳에 바위구멍이 있다. 가장 최근에 보고된 것으로 이주진 형님이 발견 하였다. 대청호 5백리길 개척자로 닉네임 돌까마귀로 더 잘 알려진 분이다. 바위구멍 밑 부분은 자연적 구멍이 발생된 돌 위에 5개의 구멍을 새겨 놓았다. 발견 당시 기원의 흔적으로 동전 5개도 함께 발견 되었다고 한다. 자연적 구멍의 영험에다 인공의 구멍을 가미한 절묘한 바위구멍이다.




나에게 계족산은 (사)대전문화유산울림 안여종 대표님으로 인해 새로운 세상을 볼수 있는 계기가 된 곳이다. 또한 안여종 대표님도 이곳 비래동 고인돌에서 처음으로 구멍들을 보았다고 했다. 물론 이광섭님은 바위구멍과 계족산은 뗄수 없는 관계가 되었고 이주진 형님도 계족산 자락 매봉골 바위구멍을 발견했을 당시 그 희열은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그러기에 또한 계족산과 인연이 맺어진 곳이다. 대전 바위구멍에 대하여 관심을 같고 활동하고 있는 4명 모두가 우연찮게 모두 계족산과 깊은 인연이 닿아 있어 이 계족산은 대전 바위구멍 역사의 산 증인 인 셈이다. 이와 같은 인연으로 2013년 7월 28일 안여종 대표님의 주선으로 (사)대전문화유산울림 바위구멍 연구모임이 정식으로 탄생 되었다.

 

동춘당을 출발 이곳 법동 소류지 까지 어어진 바위구멍길은 우리 나라에서도 보기 드문 바위구멍 길이다. 2013년 6월 10일 남해군, 프로젝트 에서는 “성혈(性穴)(바위구멍)을 체험형 관광콘텐츠로 개발” 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남해군 관계자들이 현장을 답사 했다는 기사 내용을 보았다. 우리 대전도 바위구멍에 대한 많은 관심이 이어지길 소망해 본다. 법동 소류지를 뒤로 하고 굴다리를 나와 동춘당 공원에 도착 계족산 자락 따라 펼쳐진 바위구멍 여행을 마친다.


 

걷는거리 약 11km 시간 약 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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