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성혈 여행과 이야기

바위구멍 여행(용운동새울바위구멍)

느낌표!! 2014. 1. 15. 23:17

바위구멍 여행 (용운동 새울 바위구멍)


날짜 : 2014년 1월 14일 화요일 맑음

코스 : 대전천 천동 알바위구멍-인단산-언고개-오빠나루-판암배수지-산소골-삼정동산성-갈고개-용운동새울-주산동고용골

인원 : 이주진님(돌까마귀) 이기봉님(해오름) 느낌표!

시간 : 약 7시간


오늘 답사 마지막 지점에 아들바위가 있다. 그 앞으로 일명 아들바위 사모비가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옷 샘 아래 아들바위여 나의 육성도우셨네 

어머님이 여러 차례 산육불행 격으시고 

이 바위에 나를 팔아 수명장수 하라시네 

매년마다 정월보름 떡시루를 이고안고 

정성으로 비시옵던 애정 깃든 이 바위를 

아들바위 이름으로 길이길이 사모노라


내가 처음 바위구멍을 대할 때의 감정은 사모비의 내용처럼 정성으로 비시옵던 우리네 어머님들이 많이 그려지곤 했었다. 다른 사람들도 바위구멍을 가르키며 어떤 의미로 다가옵니까 물으면 거의 대부분이 빌거나 기원하며 갈지 않았을까요 하고 대답들을 한다. 즉 성혈(性穴)로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양한 형태로 발견되고 있다. 구멍의 형태를 보고 새긴 사람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바위구멍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 계족산 바위구멍은 별자리를 나타내는 별바위 구멍 즉 星穴로



명칭이 부여 되지 않은 용화사 뒤편의 촛대바위구멍은 기자신앙적 냄새가 나는 다산바위 즉 性穴로

 


인단산 두꺼비바위구멍은 거의 岩刻畵 수준으로,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는데 동물적 모양을 표현해 해학을 나타내려는 바위구멍으로, 이렇듯 바위구멍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어 오늘 가야할 용운동 구멍은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무척 설레인다.



아침 9시 문창동 돌까마귀 산악센터에 해오름님 돌까마귀님과 같이 출발 한다. 돌까 회장님의 출발 멘트는 부사동 사득이와 부용이의 사랑 이야기 부터이다. 


1994년 제35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부사칠석놀이


부사칠석놀이는 두 연인의 비극적인 사랑에 기원을 두고 있다


백제시대에 이 마을은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두 마을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윗마을에는 부용이라는 처녀가, 아랫마을에는 사득이라는 총각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었는데,윗마을과 아랫마을 사이에 있는 샘으로 물을 길러 다니다가 사랑에 빠졌고 결혼을 약속하였다. 이후 신라가 백제를 침략하자 사득은 백제군으로 징집되어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부용 또한 보문산 선바위에 올라가 먼 곳을 바라보며 사득을 기다리다가 실족하여 죽고 말았다. 두 사람이 죽고 난 뒤 이상하게도 샘이 말라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윗마을에 사는 어느 노인의 꿈에 부용이,아랫마을에 사는 어느 노인의 꿈에 사득이 나타나 영혼 결혼을 시켜주면 물을 주겠다고 하였다. 두 마을 사람들은 칠석날에 샘을 깨끗이 청소하고 부용과 사득의 영혼 결혼식을 올려주었다. 그 후 샘에서 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다. 두 마을 사람들은 이 샘을 부용과 사득의 첫 이름자를 따서 부사샘이라 명명하였으며, 마을 이름도 상부사리,하부사리로 불렀다. 또 하나 배웁니다. 대전천 돌다리를 건너 천동 알바위에 도착 한다.







대전천 천동 알바위구멍 2호




대전천 천동 알바위구멍 1호  


2호에서는 6개 1호에서는 7개의 구멍이 새겨져있다. 특히 1호 알바위구멍은 형태로 보아 다산의 염원이 그 대로 나타나는 바위라고 말씀하시는 돌까 회장님이다. 

첫머리에서 정성으로 비시옵던 어머니를 생각 하며 효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 해보는 귀중한 알바위구멍이다. 인단산으로 향한다. 주유소 옆으로 천동 벽화마을 을 지나 언고개에서 좌측 산을 오르면 인단산이다.



천동 벽화마을



언고개-일제강정기 시대 우리나라 지맥을 끊기 위해 잘라놓은 고개로 그 이후 2번이나 더 깍아 내렸다 한다.



인단산 바위구멍 과 보문산



인단산 두꺼비 바위



인단산 두꺼비 바위를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오빠 나루로 발길을 잡는다.



천동 휴먼시아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로 뾰쪽산을 오르면 오빠나루다. 아파트 이름은 역시 영어로 이름 지어야 값이 나간다고 하는 돌까님이시다. 




오빠나루란 산이름이 전해 내려옴에도 불구 하고 뾰쪽산으로 불리는 것은 아마 산 이름 때문일까..오빠나루 무슨 술집 이름같다. 삼각점이 있는 정상에서 다 함께 기념 촬영후 산소골로 향한다. 철길을 건너고 옛 정수지를 지나 내려 가면 산소골 이다.



저 멀리 삼정산성이 있는 정상이 보인다.



경부선을 건너고 



판암면옥,원미면옥 


예전 판암면옥 하면 지금으로 예기하면 유명한 맛집이었단다. 간단히 정리하면 윗쪽 판암동에 원미면옥이 새로생겨 장사가 잘되었고 그 옆에 판암면옥을 오픈 한다. 그러자 원미면옥은 아래 즉 사진속 판암면옥 아래 원미면옥을 오픈 한다. 어느쪽이 장사가 잘 되는지 모르겠지만 장사의 도 가 무엇인지를 두 간판을 보며 생각 해 본다. 예전 배수지로 올라 간다.



벚꽃이 만발한날 꼭 다시 와야 겠다 대전에 이런 곳이 있다니




이곳 판암 배수지는 서기 1931년12월11일 에 착공하여 1934년11월1일 준공된 우리 시 최초의 정수장이며 세천 수원지를 상수원으로하여 1일 3500m3의 물을 생산하던 시설로 대전읍 중동 원동 인동 정동지역등 당시 34,532명의 시민들에게 처음으로 수돗물을 공급하기 시작한 곳입니다. 그후 인구증가와 시세의 확장에 맞춰 1980년 이후 대청호 계통 송촌 정수장에 이어 월평 정수장이 건설됨으로써 우리시에서는 1일 105만m3의 상수도 공급 시설을 갖추고 150만 시민들에게 말고 깨끗한 수돗물을 충분히 공급 할수있게 되었습니다. 이에따라 정수장 기능이 상실되어 배수지로서의 역활로만 남게된 유서깊은 이곳을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개방하게 되었습니다.

2002년 3월22일 대전광역시장





멀리 보이는 곳이 산소골 쌍청당 제실지역 이다.



작지만 좋은 휴식공간이다.



쌍청당 애각





쌍청당 애각을 돌아 내려가면 어린이 집이 나오는데 앞 마당에 구멍바위가 있다,






건물을 지을 당시 둘레담으로 많은 돌이 쓰여졌다. 그 당시 이돌은 쓸곳이 마땅찮아 다른 한쪽으로 치울려고 포크레인을 동원 했으나 워나 크고 깨트릴수가 없어 그대로 방치해 놓았다고 한다. 구멍에 대하여 물으니 자르기 위해 구멍을 팟다고 하다 파는것 까지는 못봤다고 하신다. 그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너무 일정한 구멍의 형태에다 구멍주위로 한결같이 떨어져 나간 흔적이 남아있어 기계장비의 힘이 가해졌다는 의심이 강하게 들기도 하지만 왜 그러면 둥글게 7곱 구멍을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원으로 잘르기 위해..?  50%의 감흥에 50%의 미심쩍음이 남아 있어 구별을 못하겠다. 다른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 하다. 이하우 소장님이 말한 구멍의 선별이 이렇게 어려운줄 이곳에서 많이 느낀다. 쌍청회관으로 향한다.

 







쌍청회관앞 마당에 자라잡고 있는 바위위에 2개의 구멍이 있는데 아마 깨트르기 위해  파여진 구멍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자연구멍이 뚫린 바위를 표석으로 세운것 같다.



생명력의 위대함을 보는 순간이다. 오전 답사는 이곳에서 마치고 점심을 해결 하기 위해 부여 순대로 향한다. 대전에 순대로 유명한 세곳이 있다고 한다. 천복순대, 농민순대, 그리고 부여순대, 천복순대는 집안 사정으로 쇄락의 길을 걷고 있고 여자7명의 오픈 1세대 농민순대는 지금도 번창하고, 유명한 오문창 순대도 농민순대 1세대분이 나와서 하시는 것이라네요 부여순대는 새건물로 단장을 했는데 옛집에서 새집으로 오픈 했을당시 손님이 끊겼으나 옛"기"를 이어가기 위해 엄청난 기도가 들어가 옛 명성을 찾을수 있었다고 하네요. 이름을 얻기 까지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망하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것을...그 만큼 돈 벌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유명한 로렐라이 언덕을 넘고 용운산성 식당 옆으로 해서  삼정동 산성으로 올라 간다.




로렐라이 언덕


식장산 정상은 회색을 띠지만 연초록이 둘레를 에워싸고 따스한 봄기운 뒤로 해는 뉘었뉘었넘어 가고 둥그런 언덕줄기 가운데 세구루 소나무는 왜그리 운치 있는지 그 사이로 저녁노을이 걸쳤는데 그 아름다운 풍경이 어찌 석양 비치는 로렐라이 언덕에 비하랴...돌까마귀 회장님의 말씀이다. 그 이후 이곳은 로렐라이 언덕이란 이름이 붙게 된다.



대전시내가 한눈이다.



삼정동 산성 가는길에



식장산 조망이 일품이다.



산성 못미쳐 산소옆으로 하나의 바위가 있는데...인공 흔적의 1개의 구멍



역시 다른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것 같다. 정말 어렵다. 자연적 구멍과의 선별이...



이곳도 그렇고






산성을 넘어 갈고개로 내려 간다.




중요한 갈림길이다. 왼편 새울약수터로 내려 간다.





새울 약수터 못미쳐 오른편 쪽에 2개의 바위구멍을 보고 새울약수터로 내려 간다.




새울 약수터



새울 약수터에서 오른편 방향에 바위가 있어 가까이 가보면 



인생아 울지말고 구하여 살자 비룡리 배석순 이라 각자가 되어 있고 그 앞쪽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구멍이 펼쳐 진다.




또 하나의 바위문화를 이곳에서 본다. 그 이유는 전혀 이런 구멍이 있어야할 위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집터(굿당)의 흔적은 골짜기 따라 30여m 에서 찾기는 했지만은...



드디어 대전대학교가 보이는 새울로 내려 왔다. 포도과수원이다.



저 높디 높은 바위에 구멍이 새겨져 있다.



이 5개의 구멍을 보는 순간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그려 구멍은 이런것이어야 혀...



이런 맛을 느끼기 위해 먼길을 마다 하지 않는 이유이다. 건너편 산줄기 맨 아래쪽 조망 좋은 곳에 멋진 바위가 있고 그 위에 또 다른 구멍이 있단다.





비록 2개의 구멍이지만 가슴시원함을 느낀다.




대전대학 후문이 내려다 보이는 조망이 좋은 곳이다.



아들 바위를 만나러 간다. 사모비 앞에 서 있는 바위가 아들 바위란다.




이광섭 위원님이 발견하신 바위구멍이라는데 들어갈수 없어 안타값다. 아들바위 사모비를 보면서 자식을 위해 애닳은 삶을 살았던 우리네 부모님을 생각하고 효란 과연 무엇인지 생각 해 보게 되는데 이것이 아들 바위뿐 아니라 지금까지 거쳐온 바위구멍도 똑 같다고 생각한다. 바위구멍을 보면서 과연 나는 올바르게 살아 가는지 다시 한번 뒤돌아 보는 계기가 된다. 대전대 후문 버스 정류장 에서 택시를 타고 산악센터에 도착 차량을 이용 주산동 바위를 보기 위해 출발 한다.





주산동 고용골 상곡사 뒷쪽으로 올라가 오른편 묘지에서 우측을 보면 바위가 보이는데 이곳이 오늘의 최종 목적지 이다.



남근 모양위에 구멍이 새겨져 있다.




두꺼비를 연상케 하는 바위구멍이다. 인단산 두꺼비바위와는 격이 조금은 다르지만 새긴사람의 의도가 묻어나는 바위구멍이다. 단단한 바위였더라면 정말로 좋았을것을..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말로 멋진 모습을 보며 이곳에서 모두 마친다. 함께한 해오름님 그리고 귀한시간 내어 안내해준 돌까마귀 회장님께 감사 함을 전한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