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구멍 여행 (윷판형바위구멍)
동춘당공원-비래초등학교-두겁바위-우암사적공원-대동하늘공원-대동역
2014년1월16일목요일 흐림
거리 : 약 5km
시간 : 약 3시간
이번 여행은 도심을 걷는 길이다. 번잡한 도심 속에서 덩달아 바쁘게 움직였던 생활에서 벗어나 천천히 걸어봄은 어떨까, 바쁜 일상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으로 투영 될 것 이다. 이번 코스는 비록 도심을 걷는 길이지만 바위구멍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윷판형 바위구멍을 볼 수 있는 길이다.
이번 여행도 교통편을 중심으로 출발과 끝맺음이 편리한 곳으로 잡았다. 동춘당 공원부터 출발 한다. 윷판형 바위구멍을 찾아가는 길에 동춘당 공원과 우암사적공원에서 조선이 낳은 두 분의 큰 선비도 만나 볼 수 있다. 동춘당 공원, 도시가 확장되고 발전 되면서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이다 보니 동춘당 공원은 도심 속의 섬이 된 형국이 되었다. 고목의 팽나무와 소나무가 운치를 더 해 주는 동춘당, 아버지 송이창이 세웠으며, 송준길이 48세 되던 해에 중건한 별당 건물이다. 송준길 선생은 문묘(文廟)에 배향된 해동18현의 한 사람으로, 송시열과 더불어 서인 노론을 이끌었던 분이다. 동춘당은 화려하지 않은 정갈함, 단아한 모습이 선생의 인품을 대하는 듯하다. 이 동춘당 공원을 꼼꼼히 둘러볼라 쳐도 반나절은 족히 걸리는 곳이다. 동춘당 공원 표지석 앞으로 나와 가양동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송촌동 성당이 자리 잡고 있는 고갯마루를 올라서면 경부고속도로 대전 나들목을 통과하는 지하 통로가 보인다. 지하통로를 지나 좌측 우암로 492번길 따라 올라가면 비래동 버스종점이 보인다. 많은 버스들이 보이고 휴게소 안에선 잠시 휴식을 취하는 기사님들의 담소가 정겨워 보인다. 우리 대전 시내버스 운행은 준 공영제 이다. 우리의 세금이 투입됨으로서 공익성을 강화한 제도이다. 수익성이 높은 구간에만 편중 될 수 있는 노선이 변두리 취약지역까지 확대 조정되는 효과가 있지만, 그래도 피부에 크게 와 닿는 점은 정확한 시간과 신호 지키는 모습 그리고 탑승과 하차시 기사님이 인사하는 모습이다. 처음에 인사 받는 것이 무척이나 쑥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비래동 시내버스 종점 앞을 지나 올라가면 비래초등학교 정문에 다다르게 된다. 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1941년 일제칙령 제148호 '국민학교령'에 의해 국민학교(國民學校)로 명칭이 변경되었는데, 이는 ‘황국신민을 양성한다.‘는 일제강점기의 초등교육정책을 반영한 것이다. 1995년 8월 11일 "일제의 잔재를 깨끗이 청산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 국민학교의 명칭을 변경한다."고 발표하고, 1996년 3월 1일부로 초등학교(初等學校)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초등학교 이름에도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
초등학교 정문에서 눈을 들어 진행 방향으로 내려다보면 청운 이란 건물이 보인다. 청운농장 식당으로 정문 오른편 철조망 안에 너럭바위가 비스듬이 놓여져 있는데 이것이 비래동 새터 바위구멍이다. 가로2.6m x 세로2.9m 로 매우큰 바위위에 14개의 구멍이 새겨져 있다. 처음 이곳을 방문하고 구멍주위를 쓸어내리니 주인 아주머님이 얼마나 황송해 하던지 “아이고 내가 자주 청소를 하는데 오늘은 미처 치우지 못했구먼 귀한 바위여 깨끗이 청소를 한 다음 찍으랑께” 무척 반가운 소리다. 두 번째 답사 때는 주인 어르신을 뵈었다. 식당 건물을 지으면서 이곳 장소로 옮겨졌으며 50만원을 주고 팔려고 했었다고 한다. 구멍 대하여 물으니 모르신다고 하신다.
자연 구멍 같지는 않고 사람이 판 것이여?
예! 아주 옛날 사람들이 이유는 모르지만 사연이 있어 이런 구멍을 만들었지 않겠습니까?
한참 구멍을 보며 생각 하시던 어르신이 한마디 하신다.
음! 샤머니즘적 기원이 담긴 흔적이구먼...!!!
두 번째 답사 때는 바위주위가 잘 정리 되어 있었다. 아주 옛날 14개의 바위구멍은 어떤 사연으로 새겨졌는지 모르지만 주인 어르신들에 의해 생명력이 살아나는 바위모습을 보니 가슴 따듯한 정이 느껴진다. 이곳에서 바위구멍의 매력을 또 한번 느낀다. 저 멀리 삼익아파트 길 따라 걸어간다. 명석고등학교 앞 을 지나 가양 주유소 길로 내려가면 동구보훈회관이 나오고 그 앞으로 두겁바위가 있다.
알루미늄 사각 보호대 안에 잘 모셔져있다. 정월 보름전날 마을의 액운을 막고 동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거리제가 지내지는 곳이다. 이 두겁바위 위에 2개의 구멍이 새겨져 있다. 두겁바위가 마을의 액운을 막는 수호신 역할을 한다면 그 위에 새겨진 2개의 구멍은 개인의 간절한 소망을 기원하던 자리 같아 보인다. 선돌의 허리가 부러져 시멘트로 붙여져 있는 상태 이지만 그래도 매년 거리제를 통해 두겁바위를 만나고 있으니 그 나마 다행이다. 바위구멍 2개는 누가 누구를 위해 무슨 목적으로 기원하였을까 상상 해보며 보건대학교 방향으로 발길을 잡는다. 조일 아파트 사거리를 지나 오르는 길에 보건대학교가 있다. 학교법인 청운학원이 대전보건전문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개교한 전문대학이다. 끝까지 오르면 우암사적공원에 도착 한다. 두 번째 큰선비 우암 송시열 선생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제자들의 강학과 학문을 연구 하던 곳으로 남간정사와 기국정 그리고 선생의 문집인 송자대전 목판이 보관되어 있는 이 곳에 선생의 높은 뜻을 기리고자 남간사를 다시 세우고 주변을 정비하여 공원을 조성한 곳이다.
우암 송시열-조선 숙종 때의 문신ㆍ학자 (1607~1689)로 조선후기 정치계와 사상계를 호령했던 인물, 우리나라 학자 중 ‘자(子)’자를 붙인 유일한 사람, 붓으로 세상을 움직인 노론의 영수, 조선왕조실록에 3천 번이나 그 이름이 등장 했고, 사약을 받고 죽었음에도 유교의 대가들만이 오른다는 문묘(文廟)에 배향되고, 전국 23개 서원에 제향 된 인물. 더 무엇을 말하랴 그렇지만 나에게는 자의대비의 복상 문제로 발생한 예송논쟁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로 더 기억이 남는다. 이 우암사적공원에서 눈여겨 볼 곳은 남간정사의 아름다움이다. 지금은 보수공사 중이다. 공원을 둘러보고 동아 마이스터고 쪽으로 내려간다. 유망 분야의 특화된 산업수요와 연계하여 최고의 교육으로 젊은 기술명장을 양성하는 전문계 고등학교 이다. 운동장에는 믿음직한 학생들이 달리기를 하는 모습에서 미래의 밝은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대주파크빌 네거리에서 우송대학교 서 캠퍼스 정문 방향으로 내려간다. 보건대학교에서 우송대학교를 지나 윷판형 바위구멍 길 마지막 대동역 까지는 젊음이 넘쳐 나는 길이다. 우송대학교는 워낙 넓어 4차선 도로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캠퍼스가 자리 잡고 있다. 서 캠퍼스 정문 앞을 지난다.
대동역 바로 못 미쳐 한밭여자중학교와 대동종합사회복지관 이정표가 나오는 곳에서 복지관 쪽으로 들어가면 된다. 예전엔 한밭여중길 로 불려 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복지관길 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복지관 뒤쪽으로 하늘공원 과 연애 바위가 있다. 복지관 건물에서 우측으로 돌아 올라가면서부터 벽화마을이 시작된다. 그림 속을 걷다보면 연애바위 이야기가 나오고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연애바위 정상에 오른다. 대전역 쌍둥이 빌딩을 중심으로 대전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말 그대로 오밀 조밀한 바위들이 자리 잡고 있다. 예전엔 데이트 장소가 어디 따로 있었겠나 조망 좋은 뒷동산이 연애장소였지, 그 유래는 이렇다.
“옛날 배나무가 많은 골짜기라서 배나무 골 또는 배골산 이라 했다. 배골산에는 정기어린 바위가 자리하고 있는데 마을 어르신들은 이를 연애바위라 칭하고 있다. 연애바위라고 불리워진 것은 1950년 6.25 동란 시절에 전쟁 피난민들이 배골산을 중심으로 피난민촌을 형성하며 좁은 판자 집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자식을 낳고 3 대가 사는 집들이 많았으며, 젊은 부부와 젊은 연인들이 연애 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연애바위에서 사랑을 나누고 연애를 많이 하는 장소여서 붙여진 이름 이라고 한다. 연애바위는 영험한 바위로 남. 여 간에 사랑과 소원이 원하는 대로 잘 이루어지는 신비한 바위라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옛날부터 음력 10월 중에 기일을 선택하여 이 바위를 향해 산신제를 지내왔다고 한다.“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는 연애바위 이야기로 남아 있지만 그 보다 더 오랜 옛적 연애 이야기는 연애바위위에 새겨진 7개의 바위구멍에 남아 있다. 영험한 바위로 소원대로 사랑이 잘 이루어지는 신비한 바위로 그 흔적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으니 어찌 반갑고 소중하지 안으리, 이 바위구멍을 통해 많은 소원이 이루어진 부부들을 상상하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연애바위를 뒤로 하고 풍차가 있는 하늘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연애바위와 하늘공원 사이에는 오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윷판형 바위가 있다.
등로를 가운데 두고 좌우측 바위에 윷판형 바위구멍이 새겨져 있다.
우측 바위면에 새겨진 것으로 윤곽만이 남아 있다.
먼저 우측 바위에는 2개의 큰 바위구멍과 윷판형이 새겨져 있는데 윤곽만이 남아 있다. 좌측 아래쪽 바위전면 전체에 바위구멍이 만들어져 있다. 12개의 구멍과 그 옆으로 2개의 윷판모양이 만들어져 있다. 지금까지 대전에는 많은 바위구멍들이 발견 되었으나 윷판모양이 발견되기는 이곳이 처음이다. 2012년8월4일 대전 바위구멍의 선구자 (사)대전문화유산울림 안여종 대표와 그의 아들 안수형 그 당시 초등학교(1년)에 의해 발견되었다. 당시 바위구멍을 조사 하러왔다 발견하였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윷을 놀기 위해선 넓은 곳에 새겨야 하나 대전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모든 윷판형은 윷을 놀기 불가능 한 곳에 새겼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다른 심오한 뜻이 담겨있는 것으로, 연구를 한 결과 일부 학자들에 의해 별자리를 형상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암각화의 선구자이신 이하우 선사미술연구소 소장님 논문 편에는 이 윷판형바위구멍을 북두칠성의 운행상징을 형상화한 바위그림이라 하였다. 바위구멍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단순히 구멍 차원을 넘어 岩刻畵 수준의 바위그림으로 표현 하였다. 다시 말하면 대전의 다른 곳에는 이런 윷판형 바위구멍이 없기 때문에 이곳은 옛 천문가가 새긴 첫 별자리 바위구멍(星穴)이라고도 말 할 수 있다. 참고로 학계에서는 북두칠성의 운행을 형상화한 것 외에 다른 각도로 해석한 논문들도 있다. 단순한 구멍에서 예술적 가치가 가미된 그림으로 격상된 윷판형 바위그림 우리가 관심을 갖고 보전하여 후손들에게 소중히 물려줘야할 문화유산이다. 하늘공원으로 건너간다.
대동 하늘공원, 대전시에서 대동 무지개 프로잭트 사업으로 완성 한 곳이다. 정상에 빨간 풍차가 있는데 마치 구름위에 떠 있는 모습 같다. 왜 이곳에 윷판형 바위그림이 새겨 졌는지 알것같다. 대전의 하늘이 한눈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대전 중심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사방 조망이 끝없이 펼쳐진다. 잠시 정자에 앉아 지나온 길을 더듬어 보면서 감상에 젖어본다. 아쉬운 하늘공원을 뒤로 하고 오늘의 마지막 대동역으로 내려간다.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 왼편으로 몇 걸음 내려 간면 대동역이다. 대동역에서 다음 바위구멍 여행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접는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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