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구멍(性穴)여행 (금산어풍대)
코스:요광리은행나무-보석사은행나무-어풍대
시간:4시간
위치:금산군 제원면 제원리 산14
이번 바위구멍 여행은 한밭 생협(소비자생활협동조합)회원들이 한 달에 한번 미니버스를 이용해 대전근교로 여행을 떠나는 모임과 함께 하기로 하였다. 한밭생협은 어떠한 곳인지 잠깐 소개를 하면, 나와 이웃과 지구를 살리는 윤리적 소비를 목표로, 우리 밀 살리기 운동, 친환경 유기농산물 소비를 통한 윤리적 소비, 식품 안전운동을 통한 윤리적 소비, 공정무역을 통한 윤리적 소비, 즉 사람과 노동, 식품안전, 농업과 환경이라는 3가지 핵심가치를 기준으로 윤리적 소비를 실현해가고 있는 단체이다. 이번 달은 금산 지역을 여행하는 달이다.
요광리 은행나무로 향한다. 충남 금산군 추부면 요광리에 있는 나무로 천연기념물 제84호이고 수령이 대략 천년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높이는 24m 이지만 가슴둘레는 12.93m로 우리나라 최대를 자랑하는 나무이다. 은행나무는 노랗게 물드는 가을에 와서 봐야 제 맛이지만 오랜 세월 버텨온 연륜 앞에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진다.
*천연기념물 제84호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
이 요광리 은행나무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 하면 1905년 큰 바람으로 가지가 부러졌는데 그 가지로 3년 동안 밥상을 만들었고, 1925년에 부러진 가지로는 목관을 37개나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는 울기도 하여 8.15 광복 때 울고, 6.25 전쟁 때 울고, 박정희 대통령 서거 때 울었다고 한다. 나무가 실지로 울어겠냐 만은 마을 주민들에게는 이보다 더한 전설을 간직하고 푼 것이 현실인지도 모른다. 다음은 남이면 보석사로 향한다.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길의 하나인 보석사 전나무 숲 길
진악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보석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인 절이다. 일주문 지나서 부터는 전나무 숲이 이어지는데 우리나라의 3대 전나무 숲으로 유명한곳이다.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 부안 내소사 전나무 숲 그리고 이곳 보석사 전나무 숲이다. 그런데 막상 와서 보면 실망하기 십상이다. 물론 운치는 있지만 수량이 적 고 길이가 너무 짧기 때문이다. 전나무 숲을 지나면 보석사보다도 유명산 천연기념물 365호인 은행나무를 만난다. 은행나무를 흔히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한다. 약 삼억 오천 년 전인 고생대에 출현하여 그 모습이 변치 않고 지금까지 생존 하고 있으니 가히 불가사의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천년 이상 된 은행나무로는 용문사 은행나무, 영국사 은행나무, 영월 내성군 은행나무,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 등이다.
*천연기념물 365호 보석사 은행나무
보석사 은행나무의 키는 34m로 이는 양평 용문사의 은행나무 다음으로 가장 큰 키다. 깔끔한 용모에 위풍당당한 장엄함에 압도당하는 느낌이다. 보석사는 공사 중 이어서 관람 할 수 가 없고 점심시간이 되어 금산에서 유명한 어죽 집으로 향한다.
*금산 천내리 호석
금산을 가로지르는 금강 가에는 어죽과 도리뱅뱅으로 유명한 집들이 많다. 그중 어죽은 물론 물고기 절임으로 유명한 용강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천내리 용호석(龍虎石)으로 향한다. 천내리 마을 서쪽 들판에는 고려후기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안동으로 피난 내려온 공민왕이 자신의 능묘 위치를 정하여 필요한 석물을 준비토록 하였던 것을, 왕이 개경으로 다시 돌아가자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있는 2개의 석물이 지금의 용석(龍石)과 호석(虎石)이라고 한다. 호석은 네모난 받침돌 위에 호랑이가 앞발을 세우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몸은 서쪽, 머리는 북쪽을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호랑이의 위엄은 찾아 볼 수가 없고, 일행 중 한 사람이 물개 모양 같다고 하는 소리에 모두가 동감하는 분위기다.
오늘의 마지막 코스 제원의 어풍대와 세마지로 향한다. 금산의 제원은 옛 날 부터 무주의 소천역과 용담의 달계역, 진안의 단령역 그리고 고산의 옥포역을 관할하는 제원도역승이 있었던 지역으로 전라도를 비롯하여 충청도와 남단지역과 왕래가 심했던 지역으로 역말 또는 역촌이라고 불러오던 지역이다.
금산군 제원면 제원리의 어풍대(御風臺)와 세마지(洗馬池)
어풍대란 바람을 모시는 곳이란 뜻이고 세마지라고 새겨진 것과 관련이 있는데 조선 효종 임금 때(1650년) 까지는 이곳에 큰 연못이 있었고 여름이면 미역과 놀이터이기도 했으며, 교통의 요충지로 종육품의 찰방이 담당하던 매우 큰 역이 있었던 곳이다. 그런 관계로 제원역에서 기르던 말을 자주 씻었는데 제원 사람들이 관가에 항의를 하자 제원역에서는 연못가 바위에 세마지라 세기고 말을 씻는 연못으로 만들면서 동네 사람의 출입을 제한하였다. 세마지를 옮기라고 항의하는 동네 사람이 역원에 끌려가 볼기를 맞자 그 분풀이로 말이 노는 주변에 불을 질렀고 이에 불이 붙은 말은 연못 속에서 죽고 말았다. 이후 해마다 제원리에는 큰 불이 났고 온 동네는 민심이 흉흉해지자 자봉산에서 학문을 닦던 허목선생이 당시 우의정이었던 김유의 천거를 받고 제원역 찰방으로 부임해 와보니 말죽은 귀신의 조화와 바람을 모시지 않은 탓으로 한탄하고 세마지는 메워서 없애고 이 자리에 어풍대라는 글씨를 새겼다. 어풍대란 글씨를 새긴 뒤부터는 불이나지 않고 평화로운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금산군 제원면 제원리 세마지
*금산 제원리 어풍대 선정비
세마지라는 글자는 볼 수 있으나 어풍대라는 글자는 담쟁이 넝쿨로 인해 볼 수가 없다. 어풍대 아래에는 이 고을에 부임했던 관리들, 이번, 나두삼, 이정필, 박내정, 원두표 등의 선정비 9개가 있다. 그 선정비 앞으로는 넑직한 바위가 있는데 오늘 찾고자 했던 바위구멍이 새겨져 있다. 교통의 요충지 역이 있었고, 연못이 있는 중심 놀이터였고, 세마지로 변한 다음부터는 출입제한 지역으로, 그리고 끝내는 연못이 없어지는 운명을 맞이한 곳으로 마을의 역사를 같이한 운명의 구멍 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바위구멍이 말을 할 수만 있다면 연못의 아름다운 이야기, 말 씻던 이야기, 어풍대 이야기 그리고 제원 마을의 애환 이야기를 다 들 을 수 있으련만 안타깝게도 바위구멍은 여전히 말없이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어풍대 바위구멍 앞으로는 9개의 선정비가 있다. 선정을 베푼 관원의 덕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으로 그중 원두표 한분을 소개해 본다. 원두표(元斗杓)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전주부윤이 되고, 나주목사를 거쳐 전라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1656년 우의정을 거쳐 1662년에는 좌의정에 올라 내의원과 군기시의 도제조(都提調)를 겸직하였다.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아마 전라도 관찰사시절 그 선정의 덕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인 모양이다. 수많은 관리과 찰방들이 이 제원을 거쳐 같을 것이다. 그 오랜 역사가운데 에서도 그래도 9분이 백성들의 마음에 남아 이렇게 그 공을 기리는 비석이 남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것이다.
*금산 제원리 어풍대 바위구멍
9개의 선정비에는 또 다른 고마움을 알리는 표식이 있으니 비석에 새겨진 구멍들이다. 대부분 받침돌에 새겨지는 것이 대부분이나 이곳은 특이 하게도 비석 차체에 구멍을 새겼다. 전부 다 새겨진 것은 아니고 4개의 선정비에 새겨졌는데 개인적으로 원한이 있어 화풀이로 구멍을 판 경우와 선정을 베푼 고마움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한 마음으로 새긴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아마 선정을 베푼 고마움의 표식이라고 생각 한다. 만약 원한의 경우에는 선정비를 파괴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므로 선정비에 새겨진 구멍들은 백성들의 감사한 마음이 담긴 사혈(謝穴) 인 셈이다.
*금산 제원리 선정비 바위구멍
세마지 글자 위에는 거북처럼 생긴 바위가 얹혀 있어 이 바위 전체를 거북바위라 부르는 바위가 있다. 머리는 약간 들고 있어 제원리 들판을 바라보는 모습인데 눈의 위치에 구멍이 새겨져 있어 거북의 눈이 되었고 그 밑으로는 다시 구멍을 새겨 콧구멍 역활을 하는 모습이다. 거북 형태의 모습에 구멍을 새겨 넣으므로서 거북이 완성되는 예술의 경지를 보는 듯 한곳이다. 어풍대 바위구멍과 선정비 바위구멍과는 또 다른 바위문화인 셈이다.
*금산 제원리 거북바위
이렇듯 바위구멍에는 형태적 특징과 제작 방법 그리고 만들어진 곳의 입지를 통해 그 의미가 천차만별로 나타난다. 어풍대 바위구멍은 마을의 애환을, 선정비 구멍은 감사함을, 이곳 거북바위는 구멍자체가 예술적 위치를 나타내는 형식으로 까지 나타난다. 그러므로 바위구멍여행은 되세 기면 되 세길 수 록 매력이 넘치는 여행이라고 할 수가 있다. 어풍대를 뒤로 하고 대전으로 향하면서 모든 일정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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