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바위구멍(性穴)여행 (장동)
◇장동산디마을바위구멍
*코스:장동주차장-탄약지원사령부-유채꽃단지-장동산림욕장-산디마을
*거리:약5km
*시간:약2시간
*교통편:승용차(산림욕장주차장)버스(74번)
장동, 계족산 자락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북쪽금강으로 흘러가는 용호천, 그 발원지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 회덕에서 탄약지원사령부라는 무지무지한 이정표를 보고 구불구불 동쪽의 높은 산을 넘어가야 하는 마을, 계족산이나 올라가야 마을이 있음을 알 수 있는 외진 곳. 한번 들어가면 나 올수 없을 것 같은 그 곳에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붐볐던 마을이다. 한국전쟁이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기지촌이 이루어져 미군을 상대로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곳이다. 우리는 그분들을 양공주라고 불러 섰다. 미군이 떠난 지금은 한국군 부대가 들어와 옛 이야기가 되었지만 마을에는 지금도 많은 빈집들이남아 있어 슬픈 자취를 말해 주고 있다.
장동 삼림욕장 주차장에서 발걸음을 시작하는데 장동의 명성에 비해 주차장이 턱 없이 모자란다. 그 명성이란 계족산의 황톳길 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고 그 황톳길 시작점이 장동이어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주차위반하면 견인한다는 현수막이 시골길에 나부끼는 모습이 도리어 이색적이다.
*도장동(桃長洞) 표석, 장동(長洞)에 복숭아도(桃)를 붙인 이유를 모르겠다.
탄약지원사령부를 향하여 내려가는 길, 징골 마을입구에는 암행어사 홍공철주영세불망비(暗行御史洪公徹周永世不忘碑)가 있다. 산 넘어 유명한 은진송씨들의 민폐를 암행어사 홍철주가 해결해 주어 그 보답을 영원히 잊지 못하기에 세운 비란다. 그 옆으로는 도장동(桃長洞)이라는 표석이 있는데 장동(長洞)에 복숭아도(桃)를 붙인 이유를 모르겠다. 그 앞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여느 한적한 농촌모습 인데 조그마한 시골에 비해 울긋불긋한 지붕들이 밀집해 있는 집들은 그 옛날 불야성을 이루었던 시대의 흔적이라 생각 하니 마음이 짠했다.
* 장동 마을
마을 끝 탄약지원사령부에서 유턴하여 유채꽃 단지로 올라가는 길, 장동마을의 중심거리를 통과 하는 그 길은 여느 소 도시 못지않는 거리 모습으로 부대 정문을 향해 나 있다. 안타깝다면 빈집들이 많다는 점이다. 중심거리를 벗어나자 유채꽃 단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 장동 마을의 중심거리, 눈감으면 아리따운 아가씨가 잘록한 허리를 흔들며 걸어가는 모습이 그려지는 곳이다.
아쉽게도 때가지나 유채꽃은 볼 수 없지만 바람에 일렁이는 푸른 유채가 넘실되는 모습은 바다의 파도를 연상케 한다. 새로운 농외소득으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위해 "경관농업단지"를 조성 한 곳으로 농토를 소유한 주민들에게는 벼농사에 준하는 소득보장을 해주고 시민들에겐 아름다운 유채꽃을 감상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기 위함 이란다. 유채가 끝나면 갈아엎어서 녹비로 삼아 코스모스를 파종한다고 하는데, 파란 하늘에 가을 코스모스가 일렁이는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은 벌써 가을에 와 닿는 느낌이다.
*때지난 유채꽃 단지
아쉬운 유채꽃 단지를 뒤로하고 삼림욕장으로 발길을 잡는다. 장동산림욕장은 삼림욕으로 좋은 곳이지만 지금은 황톳길로 더 유명한 곳이다. 휴식과 치유 그리고 체험의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어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이 길은 너무나 유명하여 대전의 아름다운 길 편에서 다시 하번 소개 하기로 하고 2.7km 산책로 길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온다. 마을의 썰렁한 중심거리에 비해 이곳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넘쳐나는 곳으로 제2의 장동시대가 도래한 느낌이다. 많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산디마을로 올라간다.
*장동 산림욕장 황톳길
산디마을은 우리의 민속신앙인 탑신제와 산신령제가 잘 보전되어 내려와 탑신제는 대전시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이 되고 마을은 무형문화재 보유 단체로 지정이 된 곳이다. 마을입구에는 냇가를 사이에 두고 냇가에는 탑 할머니, 도로가에는 탑 할아버지로 시월 초삼일에는 산신령제를 정월 열 나흗날에는 탑신제를 지내는데 수십년 이상 한해도 거르지 않고 있어 우리나라의 많은 민속학자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 장동 산디마을 탑 할아버지
마을로 들어서면 정겨운 돌담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많지 않는 가구 수이지만 저력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다. 또한 이곳은 계족산 봉황정으로 이어지는 산디마을 산신제길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마을버스 종점에서 봉황정으로 이어지는 산신제길 따라 80m정도 올라가다보면 오른쪽으로 철망이 쳐져있고 감나무가 있는 밭이 나오는데 그곳에는 오늘 찾아보고자 했던 바위가 있고 그 바위에 5개의 구멍이 만들어져 있다. 일명 장동 산디마을 바위구멍이다.
*장동 산디마을 산신제길 안내판
마을 어르신 한테 물으니 밭둑에 뭍혀있던 바위를 포크레인으로 파 내놓은 것이란다. 4개의 구멍은 상당히 크며 매끈 한것이 애기볼을 만지는 감촉에 비교 될 만큼 보드럽게 다듬어져 있다. 건강한 처녀가 긴머리를 샴푸 하고 린스로 마무리 한,부드러운 머리결 같은 감촉 이랄까, 한번 만지면 부드러움 때문에 자꾸 손길이 가는 그런 형태의 구멍이다. 눈을 들으면 웅장한 계족산성 서벽이 띠를 두르듯이 펼쳐 보이는 곳에 무슨 사연이 있었길레 이렇게 구멍이 만들어 졌는지, 궁금함을 마을 어르신 한테 물으니 구멍에 대하여는 전혀 모르신 다고 하신다. 모양과 형태를 보면 별자리와는 거리가 먼, 적히 개인적 기원의 성혈(性穴)로 보인다. 매끈 하게 잘 다듬어진 형태를 보면 대단한 정성이 들어 간 것만은 분명하다. 말 없는 바위구멍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 장동 산디마을 바위구멍
장동 산디마을 바위구멍을 뒤로 하고 마을 어르신을 따라 논 둑 길을 따라 걷는다. 어르신이 어릴적 동네에 심한 가뭄이 닥쳐와 계족산에서 기우제를 지낸다고 하기에 온 동네 사람들이 계족산으로 기우제(어르신은 무제라고 하셨다.)를 보러 올라 갔다고 한다. 지금의 계족산 과 봉황정 사이에 누가 묘를 써서 그런 액운이 닥쳐 왔다고 한다. 묘를 파 헤치고 불을 놓고 춤을 추기 시작하니 그 맑던 하늘에 거짓말 같이 먹구름이 몰려와 소나기를 퍼부어 비를 흠뻑맞고 내려 왔다고 한다. 때가 맞았는지 어째 는 지는 모르지만 기우제의 효험이 그렇게 큰 줄은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고 한다. 지금 나이가 83세, 83년동안 살면서 단 한번 있었던 무제(기우제)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계족산성 바위구멍을 이야기 하시는데 지금까지 바위구멍과 인연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일반사람 한테 바위구멍에 대하여 이야기 듣는 것은 조성호 어르신이 처음 이다. 계족산성 바위구멍은 유명한 바위로 산성안에 있던 장수가 오줌을 누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계족산성 바위구멍은 누가 왜 만들어 놓았는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증인인 셈이다. 물론 신뢰 하기 어려운 이야기 이지만 계족산성 바위구멍에 대하여 전하여 지는 단 하나의 귀중한 이야기를 들 을 수 있는 행복이 아닌가 한다.
*장동 산디마을 바위구멍에서 바라본 계족산성
장동 마을 끝 자락 둘레따라 돌으며 같이한 발걸음 끝 없는 이야기에 발걸음은 어느덧 산디 마을을 되돌아 내려와 산림욕장 주차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주차장은 어느새 차고 넘쳐 도로 따라 줄지어 서 있는 차량이 장관을 이룬다. 다시 한번 황톳길의 유명세를 실감 하며 주차장에서 모든 일정을 마친다.
장동 마을 구석 구석을 걸으며 마을의 정취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탄약지원사령부 앞 길을 걸으며 그 옛날 아리따운 아가씨가 웃음을 팔아야 했던 아픈 기억을, 모내기가 막 끝난 논을 둘러보는 농부에서 한적한 농촌 풍경을, 아장거름의 꼬맹이 들이 황톳길을 걷는 모습에서 무안한 미소와 기쁨을, 산디 마을 돌탑에서는 전통의 소중함을, 그리고 마지막 산디마을 바위구멍에서는 이름 모를 손길이 닿은 애틋한 사연은 어떤 것인지 상상의 나래을 펼 수 있어 행복한 나들이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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