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대전 여행 둘레길

무수동 무수천하길

느낌표!! 2014. 11. 10. 20:40

대전의 아름다운 길

 

◇무수동 무수천하길

 

*코스:무수동입구/국사정/운남산/여경암/유회당/오룡정/임도/상감청자가마터/광영정/무수동입구

*길이:약5km

*시간:3시간

*교통편:버스(33번)

 

서대전 네거리에서 33번 버스를 타고 입구에 내리면 많은 나무 장승들이 무수동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반기고 있는데 무수천하 마을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무수천하, 하늘아래 근심 없는 마을이란 뜻인데 사람이 살아가면서 제일 행복한 것이 근심 없이 살아가는 것일 게다. 그러므로 무수동은 한마디로 살기 좋은 마을이란 뜻이다. 더욱이 무수동을 찾는 이유는 광영정 길이 너무 아름답다고 소문이 나있어 꼭 한번은 와보고 싶었던 곳이다.

 

 

무두동 무수천하 입구 뒤로는 시끄러운 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근심 없는 마을 입구에는 고속도로가 지나가고 그 밑으로는 도로가 갈라지고 있어 마음이 산란하여 먼저 근심을 안고 마을로 들어간다. 산등선을 등지고 바싹 붙어 줄지어 늘어선 마을 모양이 초승달 모양을 연상케 한다. 중간의 산등선에는 잘 가꾸어진 공동묘지가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아~뭔가 다른 마을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조상을 잘 섬긴다는 것은 그 만큼 효심이 넘쳐나는 마을이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추수하지 않은 노란 벼논이 마을 앞을 차지하고 있고 길옆으로 전통장류체험장 이라는 조금한 팻말이 있어 팻말 따라 마을 사이를 지나간다. 겨우 승용차 한 대 지나갈 골목길에는 마침 노부부가 시장에 낼 부추를 다듬고 있다. 이 길은 마을 뒤 길인데 다시 마을 앞으로 넘어오는 길을 물으니 자세히도 알려 주시는데 미안할 정도다. 정답게 일하는 모습이 어찌나 다정스러운지 나도 저 나이 되면 저렇게 행복하게 일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며 고개를 저었다.

 

 

무수동 전통장류체험장 가는 이정표, 마을 사잇길을 지나가야 한다.

 

길이 갈라지는 곳에는 전통장류체험장이 있어 둘러보고 작은 계류를 따라 올라가니 국사정이란 정자가 작은 냇가에 자리 잡고 있다. 뒤로는 보문산 국사봉 줄기를 배경 삼고 앞으로는 시냇물소리를 담는 정자가 운치 있어 보인다. 노부부가 큰길을 따라 올라가지 말고 냇가를 건너라고 강조하고 강조하던 것은 유회당 이정표가 개울 건너에 있기 때문이다.

 

 

국사정

 

이정표 따라 올라가면 정다운 고개를 만나고 유회당으로 내려가지 말고 왼편 숲속의 정자방향 산길로 발길을 잡는다. 주로 참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마침 울긋불긋 물들어 가고 있어 마치 단풍으로 유명한 명산을 걷는 기분이다.

 

영주산(瀛州山), 방장산(方丈山)과 함께 중국 전설상에 나오는 삼신산(三神山)중의 하나인 산, 신선이 살며 불사의 영약이 있고, 짐승은 모두 빛깔이 희며, 금은으로 지은 궁전이 있다고 하는 산이 봉래산이다. 그래서 우리의 옛 선비들이 많이도 갖다 붙였던 산이다. 그런데 이곳 무수동 뒷산도 그 유명한 봉래산이다. 그래도 다행 인 것은 거창한 정상 이름답게 아름다운 무수동 마을이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봉래산에서 바라본 무수동 마을 앞으로 고속도로가 가로 질러 가고 있다.

 

왼편으로 유회당 기와지붕이 빼꼼히 보이고 두 그루의 노란 은행나무와 붉은 느티나무가 작은 초가와 어우러진 광영정이 보이고, 많은 비닐하우스 앞으로 추수하지 못한 노란 벼논이 눈앞의 그림을 환하게 살리고 있다. 봉래산을 뒤로 하고 다시 고운 산길을 올라가 삼각점 정상에 도착하면 운남산이다. 숲이 가려 조망이 없어 아쉽지만 이 운남산에서 더 오르지 않고 오른편으로 내려가야만 산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여경암으로 내려 갈수 있다.

 

 

고즈넉한 무수동 여경암 가는 길

 

작은 돌탑이 있고 낙엽 쌓인 굽은 길가로 키 큰 벚나무가 늘어서 있어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지면 유형 문화재 18호인 여경암이다. 먼저 안내판이 눈에 띄는데 내용은 이렇다.

 

 

유형 문화재 18호인 여경암

 

 

여경암은 ㄷ 자 건물로 되어 있다.

 

여경암 과 거업재는 유회당 권이진 선생이 1715년에 후손과 후학들의 교육 장소로 세운 건물이다. 여경암 이라는 이름은 송나라 사마온공이 교육을 위하여 세운 “여경사”라는 강당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현재는 불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거업재는 “군자의 도를 배운다.” 는 뜻을 지닌 서당 건물로 오른쪽 2칸 대청은 공부방, 왼편의 온돌방 2칸은 겨울철 공부방으로 각각 사용하였다. 여경암 뒤에는 산신당이 있는데, 내부에 산신탱화가 모셔져 있다. 불교 사원과 유교 교육기관, 그리고 도교적인 산신당이 한 울타리 안에 있어 매우 특이하다.

 

 

“군자의 도를 배운다.” 라는 뜻을 가진 거업재

 

여경암은 ㄷ자 건물로 3단위에 단청 없이 정면 5칸으로 지어졌는데 건물 앞에는 고목의 배롱나무와 향나무가 있다. 거업재는 경사면에 짓다보니 집이 길게 늘어져 정면6칸이 되었고 마당이 좁아 사진을 담을 수가 없어 옆에서 찍어야 한다. 산신당은 앙증맞게 작은 건물이다. 깊은 산속에 들어온 듯한 조용한 여경암 뒤로 나무 잎이 물드는 가을 속에서 푸른 대나무 숲이 펼쳐져 계절이 잠시 거꾸러 가는 듯하다.

 

 

여경암 가는 길이 아름답다.

 

거업재를 뒤로하고 유회당으로 굽이돌아 내려가는 길은 비록 아스팔트로 포장되어진 길이지만 그림 같은 길이다. 바위위로 흐르는 작은 시냇물을 거스르지 않고 돌아가게 만들고 그러게 생긴 공간은 자연스레 작은 동산이 만들어져 조화를 이루었다. 거기에다 동산가운데에는 키 큰 나무가 자라고 있고 검정 아스팔트는 경사져 붉은 띠로 미끄러짐을 방지한 것이 도리어 아름다운 그림이 되었다.

 

 

여경암 가는 길이 운치 있다.

 

그 길을 내려오면서 다시 뒤돌아보면 마침 처사 한분이 떨어진 낙엽을 쓸고 있는데 가드레일 따라 줄지어선 잣나무가 또한 그림 같이 펼쳐진다. 그렇게 굽이굽이 돌아 내려가면 권유묘역이 나오고 그 앞으로 유회당 기와 건물과 광영정의 나무, 그리고 노란 벼논이 눈앞에 펼쳐진다. 드디어 유회당으로 들어간다. 유회당은 이츠 대전에 실렸던 대전문화유산 이야기의 김민섭 글을 인용 해본다.

 

유회당의 충효문을 들어서면 직사각형의 활수담(活水潭)이 있다. 활수는 주자의 시 관서유감 기이(觀書有感 其二)에 나오는 ‘爲有源頭活水來 (위유원두활수래) 근원에서 신선한 물이 흘러 들어오기 때문 이라네’ 라는 문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활수담의 돌다리를 건너 돌계단을 오르면 유회당이다. 왼편 온돌방에는 구시재(求是齋), 오른편 온돌방에는 불기재(不欺齋)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편액 아래로 만회 권득기의 십자훈이 주련으로 걸려 있다. 내용은 ‘매사필구시 무락제이의 (每事必求是無落第二義)’로 ‘모든 일은 반드시 옳은 것을 구하고 의롭지 못한 일에 빠지지 말라’는 뜻으로 동방 제일의 전서(篆書)미수 허목의 글씨다.

 

 

“부모를 간절히 생각하는 효성스러운 마음을 늘 품고자” 뜻을 가진 유회당

 

유회당 뒤편으로 건물 두 동이 있다. 왼편은 장판각으로 사당으로 사용 했고 오른편은 삼근정사로 삼근정사(三近精舍), 하거원(何去園), 수만헌(收漫軒)이라고 쓰인 편액이 걸려 있다. 삼근정사는 선친인 권유의 묘소와 집 바로 옆의 담 밑을 흘러가는 시냇물, 시내를 따라 우거진 철쭉, 이 세 가지가 가깝다는 뜻이다. 하거원은 선친 묘소가 있는 이 동산을 어떻게 떠날 수 있으랴 하는 의미다. 수만헌은 남송사대가인 석호 범성대의 시구 중 ‘천석종수만랑신(泉石終收漫浪身)’에서 따온 것으로 권이진의 최초 자호(自號)에서 따온 것이다.

 

유회는 “부모를 간절히 생각하는 효성스러운 마음을 늘 품고자” 하는 뜻이고 삼근정사는 묘를 지키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즉 시묘 살이 건물인데 우리가 생각할 때 시묘 살이 건물은 묘 옆에 조그마한 움막에다 다 쓰러져 가는 초가를 연상케 한다. 그런데 이곳의 시묘 살이 건물은 너무 호화롭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그 시대 백성들에게 기와집은 언감생심 생각도 하기 힘든 집이기 때문이다.

 

유회당 건물사이에 멋진 소나무를 바라보면서 정문으로 되돌아 내려오면 방명록이 있는데 유회당을 보고 느낀 점을 대신 해 본다.

 

현재와 옛날의 모습을 비교 할 수 있어 좋습니다.

옛날에는 이렇게 살았구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납골당에 모셨는데....

본받을 일입니다.

감탄이 나오는 한 폭의 그림 같아 요

어머니 품처럼 따뜻하네요

옛 선비들의 기품이 느껴집니다.

관리 잘 하셨어요

옛 숨결이 느껴져 경건 해져요

수려한 경관에 눌러 살고 싶네요

 

 

아름다운 오룡정

 

유회당을 뒤로 하고 고속도로 밑을 통과하면 두 그루의 느티나무 보호수와 사각정자가 있는 오룡정에 닿는다. 마침 보호수 주위로 마을 분들이 청소를 하고 계신다. 이곳은 갈림길로 포장도로 말고 예쁜 임도길이 있다고 하여 임도를 따라 올라간다.

 

 

오룡정에서 가마터 넘어가는 임도

 

굽이도는 길 위에는 가을을 재촉하는 낙엽이 뒹군다. 그리고 상염에 빠져들게 길은 말없이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 안간힘을 쏟으며 버티고 있는 임도위의 초록의 잡풀은 차바퀴 자국에는 어쩔 수 없이 그 흔적을 지웠다. 그 길은 S 자를 그리며 단풍져 가는 숲속으로 달려가며 끝을 맺는다. 사람이 만들어 넌 임도는 끝이 나고 자연오솔길은 보문산 오두산을 향해 나있다. 오늘은 산보다는 아름다운 길 여행이기에 왼편의 작은 오솔길 따라 삼감청자를 구웠다는 구완동 삼감청자 가마터로 내려간다.

 

 

오룡정에서 가마터 넘어가는 임도

 

 

기념물 제35호인 구완동 상감청자 가마터

 

광명농장 안에 있는 가마터로 모두 2기가 확인되었고 많은 양의 도자기가 오랫동안 생산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안내판에는 설명하고 있다. 기념물 제35호인 구안동 삼감청자 가마터를 내려가면 오룡정, 다시 고속도로 밑을 통과 하여 직진 하면 광영정이다.

 

 

달 난간 햇빛 바람을 참 멋있게도 표현한 편액이 걸려 있는 광영정

 

사각의 초정으로 권이진의 장남인 권형징이 지었다는 광영정인데 마루아래에는 물이 흘러가게 만들었고 누구나 편히 쉬어갈 수 있도록 했다. 각 방향마다 용도에 어울리는 편액을 걸었는데 동으로는 수월란(受月欄) 달빛을 받는 난간, 서로는 관가헌(觀稼軒) 농사짓는 운람들을 바라보는 집, 남으로는 광영정(光影亭) 배회담 연못 물 위에 그림자가 비치는 정자, 북으로 인풍루(引風樓) 바람을 끌어들이는 누각 이라고 걸려 있다. 달 난간 햇빛 바람을 참 멋있게도 표현하였다.

 

 

뒤돌아본 아름다운 광영정 길

 

배회담의 조그마한 연못 옆으로 노랗게 물들을 두 그루의 은행나무와 붉게 물들어 가고 있는 느티나무 사이에 지어진 사각의 초정이 그림 같은 곳이다. 비록 아스팔트길 이지만 무수동 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휘영청 밝을 달이 떠올라 세 그루의 나무와 광영정이 작은 못에 반영이 되었을 때는 비록 보지 못하였지만 지금의 그림만으로도 심금을 울리고도 남는 곳이다. 광영정 옆으로 권이진 선생이 처음으로 터를 잡았다는 안동권씨유회당 종가를 둘러보고 처음 시작하였던 무수동 입구로 내려가 무수동 무수 천하 길을 끝맺는다.

 

봉래산 운남산 아래 아늑히 자리 잡은 무수마을이 하늘아래 근심 없는 마을 이라 했다. 그런데 봉래산에서 바라본 근심 없는 마을은 누군가 큰 획을 그으며 불 난을 일으켰다. 그것은 나라에서 개통한 고속도로로 평화로운 무수동을 훼손 하여도 엄청난 훼손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소음에다 앞을 틔워 가슴 시원한 풍경도 턱 하니 가로막고 있다. 근심이 없던 마을은 이제 크나큰 근심이 생긴 모습이다.

 

이런 말이 있다. 상대가 미우면 젓가락 질 하는 자체 모습도 밉고, 상대가 좋으면 뷔페에서 통째로 음식을 내 무릎위에 엎질러도 괜찮다고, 그 것은 상대는 그 대로 인데 내 마음이 변하고 안변하고 차이다. 그래서 무수동도 어찌 마을이 변한 형태만 보고 근심 많은 마을이라고 하겠나 그 속에서 생활하는 무수동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말이다. 그래서 마을 입구를 들어서며 느꼈던 큰 근심은 나올 때에는 모두 잊은 아름다운 길 나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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