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원도심 나들이/대전 원도심 걷기

대전시민대학에서 목동성당 까지

느낌표!! 2017. 4. 26. 11:10

원불교

소태산 박중빈이 세운 종교로 불교와는 다른 후천개벽의 바탕으로 『정전』과 『대종경』이 원불교의 기본경전이다. 교육 사업으로 1951년 종전의 유일학림 전문부를 개편하여 원광대학으로 만들고, 중등부는 원광남·녀중고등학교로 만들어 인가를 받았다.

대한불교 조계종

1,7000년 한국불교 역사, 문화자산을 온전히 계승해온 종단으로 한국불교를 대표하고 있다. 종조(宗祖)즉 대한불교 조계종 종단을 처음으로 일으킨 스님은 도의(道義)국사(國師)이다. 도의국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입당(入唐)하여 인가를 받고 조사가 되어 신라로 돌아와 이 땅에 최초로 선(禪)을 전한 스님이다. 부처님의 깨달음인 선(禪)을 인도에서 중국으로 처음 전한 분이 초조 달마대사라면 이 달마대사의 선(禪)을 우리나라에 처음 전한 분이 바로 도의국사이다.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리교 창시는 영국교회의 사제였던 웨슬리에 의해 1774년 미국에서 창시되었다. 한국감리교회는 미국 감리회를 통해 전래되어 두번의 분열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단일 조직의 교회로 성장하였다. 교육 사업으로는 목원대학교 협성대학교를 비롯한, 배재, 이화, 배화학당의 기초를 세웠으며, 종로서점을 설치하였다. 전국에 400여개의 교회가 있으며, 한국 개신교 3대 교단의 하나로 손꼽힌다.


대전출입국관리사무소

대전출입국관리사무소는 출입국 심사 및 체류외국인 관리, 사증발급인증서 발급, 출입국사범 조사 및 보호, 체류외국인의 동향조사와 증명 발급 등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설치된 대한민국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소속기관이다. 출입국관리소장은 서기관으로 보호 받으며 천안, 서산, 당진 출장소가 있다.


목동, 중촌동 맞춤패션 특화거리

대전 목동, 중촌동 맞춤패션 특화거리는 전국 3대 맞춤거리로 유명하고 서울, 대구 보다 그 규모가 크다고 한다. 구 대전형무소의 역사유물 정비와 가로환경 및 주차장 정비 사업으로 역사 문화 자원의 관광명소가 조성된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패션쇼, 문화축제 등과 함께 찾는 이가 많아 질것으로 기대된다.

1970년대부터 자생적으로 생긴 목,중촌동맞춤패션 거리에는 현재 직물부 15개소, 양장부 54개소, 양복부 3개소, 부속부 3개소 등 70여개 상점이 밀집해 성업 중이다. 정장, 드레스, 연부복, 한복, 무대의상, 댄스복 등 다양한 의상을 맞출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가 있다.



구대전형무소망루

구대전형무소망루는 대전형무소가 있던 자리로, 1960년대 말 도심의 확장과 함께 형무소가 이전하면서 담장과 형무소 본관은 철거되었다. 대전형무소는 3·1운동 이후 계속적으로 만세운동이 이어지자 독립투사들을 수감하기 위해 일제가 소규모로 설치하였던 것을 1939년 대규모 시설로 확장·준공하였다. 도산 안창호 선생을 비롯한 많은 독립투사들이 수감되어 옥고를 치렀고, 6·25전쟁 때는 연합군에 쫓기던 북한군이 1,300여 명의 양민을 포함 6,000여 명을 무참하게 학살하기도 하였으며, 근래에는 화가 이응로가 수감되기도 한 곳이다. 민족의 비극을 되돌아보기 위해 보존되고 있는 망루는 역사의 한 자취로써 의미를 가진다.

천주교 목동성당

거룩한 말씀 수녀회 성당은 역사적 건축사적 의미가 커 문화재 자료 제45호로 지정된 건물이다. 1919년 천주교 대전 본당이 만들어 진후 1921년 지은 대전 최초의 성당이며 6.25 당시에는 선교사와 양민 수백 명이 학살된 현장이다. 성당은 인민군 치안본부로, 인민군이 철수한 이후에는 국군의 본부로 사용하였고 성당 내 우물에도 시체가 가득했었다고 한다. 이런 아픔을 간직한 건물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방치되다 1958년이 돼서야 목동성당으로 문을 열었고. 그러다가 1968년 거룩한 말씀의 수녀회 성당으로 양도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