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원도심 나들이/대전 원도심 걷기

대전 원도심 걷기 (대전 성지 순례 길)

느낌표!! 2014. 12. 23. 20:43

 

대전 원도심 걷기 (대전성지순례길)


◇대전 성지 순례길


*코스:오룡네거리대순진리회/목동거룩한말씀수녀회성당/구대전형무소망루/보문교회/원불교대전교당/구충남도청사/대흥동성당/대전역/인동천도교교구

*길이:4km

*시간:2시간

 

우리사회가 혼탁하지 않고 맑고 바른 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종교의 힘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일부 이기는 하지만 종교로 인해 다툼이 이어지고 심지어 전쟁으로 까지 발전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비록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많은 종교인들이 절대자들이 표방했던 뜻을 몸소 실천 하고자 낮은 자세로 많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종교인을 조사 했더니 우리나라 인구보다 많은 사람이 종교를 갖고 있다는 웃지 못 할 통계도 본적이 있다.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다.


전북에 가면 종교를 따라 걷는 길이 있다. 그 이름은 아름다운 순례길인데 천주교의 나바위 성당, 개신교의 효자동교회, 불교의 송광사, 원불교교당 등 240km의 길을 따라 성지를 순례하는 길을 말한다. 신부님, 목사님, 스님, 교무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뒤돌아보는 성찰의 계기도 되는 아름다운 순례길이다.


전북의 아름다운순례 길을 대전에 벤치마킹하여 짧은 길이지만 걸어 보고 싶었다. 대전에도 이것이 시초가 되어 전북의 아름다운순례길 같이 좋은 길이 만들어 진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첫 출발은 오룡 네거리에서 출발 하는데 많은 십자가에 놀랐다. 무심코 지나다닐 때는 몰랐는데 관심을 같고 보니 거짓말 조금 보태 한집건너 십자가가 보인다. 그러니 종교를 떠나고서 생활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오룡 네거리에 도착하여 보면 목동방향으로 빨간색에 大자 모양을 건물에 형상화한 특이한 높은 건물이 보인다. 재단법인 대순진리회 건물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대순진리회는 증산교(甑山敎) 계통의 민족종단 중의 하나로 태극도(太極道)에서 분리되었으며, 현재 수십 개에 달하는 증산교 계통의 종단 중에서 교세가 가장 크며 활동도 왕성하다. 고 돼있다. 1층 안내실 에 들어가니 마침 모든 분들이 활동을 나가 안내를 받을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다. 특이한 것은 지금 이 건물은 서울에서 분파되어 대전까지 교세가 확장되어 지어진 것이라는데 좀 어려운 내용 같아 다음으로 미루고 목동교회천주교로 향한다.

 

 

*오룡 네거리에 있는 재단법인 대순진리회 건물


 

대전 대성 고등학교와 마주대하고 있는 목동교회천주교를 찾은 것은 거룩한 말씀 수녀회 성당이 같이 있기 때문이다. 거룩한 말씀 수녀회 성당은 역사적 건축사적 의미가 커 문화재 자료 제45호로 지정된 건물이다. 1919년 천주교 대전 본당이 만들어 진후 1921년 지은 대전 최초의 성당이며 6.25 당시에는 선교사와 양민 수백 명이 학살된 현장이다. 성당은 인민군 치안본부로, 인민군이 철수한 이후에는 국군의 본부로 사용하였고 성당 내 우물에도 시체가 가득했었다고 한다. 이런 아픔을 간직한 건물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방치되다 1958년이 돼서야 목동성당으로 문을 열었고. 그러다가 1968년 거룩한 말씀의 수녀회 성당으로 양도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다.

 

 

 

*거룩한 말씀의 수녀회 성당

 


 

*전형적인 중세 고딕식 건축 양식이다.

 

 

 

*장방형 평면에 정면 중앙부로 종탑이 솟는 성당 건축의 전형적 모습이다.

 

 

 

*거룩한 말씀 수녀회 성당은 지정문화재자료 제45호이다.

 

거룩한 말씀의 수녀회 성당은 전형적인 중세 건축 양식인 고딕식으로 정면 중앙부로 솟은 종탑의 모습은 성당 건축의 전형적인 모양이다. 건물은 화려하지 않고 작지만 단아하고 소박한 모습이라 오랫동안 발길이 머물러진다. 눈싸움 하는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선병원 앞에 있는 구대전형무소망루로 향한다.


구대전형무소망루는 대전형무소가 있던 자리로, 1960년대 말 도심의 확장과 함께 형무소가 이전하면서 담장과 형무소 본관은 철거되었다. 대전형무소는 3·1운동 이후 계속적으로 만세운동이 이어지자 독립투사들을 수감하기 위해 일제가 소규모로 설치하였던 것을 1939년 대규모 시설로 확장·준공하였다. 도산 안창호 선생을 비롯한 많은 독립투사들이 수감되어 옥고를 치렀고, 6·25전쟁 때는 연합군에 쫓기던 북한군이 1,300여 명의 양민을 포함 6,000여 명을 무참하게 학살하기도 하였으며, 근래에는 화가 이응로가 수감되기도 한 곳이다. 민족의 비극을 되돌아보기 위해 보존되고 있는 망루는 역사의 한 자취로써 의미를 가진다.<문화재청>

 


*지정문화재자료 제47호인 구 대전형무소 망루

 

 

*한국전쟁당시 시체가 가득했던 대전형무소 우물

 

망루 건너 편에는 1919년 대전 형무소 개설당시 재소자들의 식수용으로 만든 우물이 있는데 한국전쟁당시 수많은 반공지사들이 수장되기도 했던 곳이다. 위와 같은 민족의 비극이 두 번 다시는 일어나지 안길 바라는 소망을 옛 형무소를 지켜보고 있는 왕버드나무가 말없이 전해 주고 있다.

 

 

*평화의 나무 왕버들 안내판

 

 

*평화나무 아래서 따뜻한 겨울 햇볕을 즐기는 어르신들이 정말 평화 스럽다.


 

평화나무 “왕버들”


이 나무는 약60년이상 수령으로 추정되는 왕버드나무다. 1984년 대전교도소가 유성구 대정동으로 이전해가면서 교도소안 연못가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심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는 기억 하네

1950년7월 산내 골령골로

오랏줄에 묶여 끌려가던 수많은 사람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나는 기억 하네

1950년 9월, 수많은 이들이 참혹하게 죽어간 모습

짐승처럼 학살된 사람들.....

그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


나는 보고 있네

사방에서 돋아나는 푸른 새싹들

재잘 거리는 아이들

우러우렁 유쾌한 청소년들

여유롭게 산책하는 노인들


나는 바라네

이 평화가 오래도록 계속되기를.......


-자립형지역공동체사업단 중촌마을역사탐험대 그루터기-


평화나무 왕버드나무 아래서 따뜻한 겨울 햇볕을 즐기고 있는 어르신들 모습에서 참다운 평화를 보는 듯하다. 구대전형무소망루를 뒤로 하고 대전 세무소 앞에 있는 보문교회로 향한다.

 

 

 

*대전 보문교회

 

 

*유럽 중세기 건축의 전형적인 고딕식 건물이다.

 

 

*하늘 높이 탑신부와 십자가를 설치하여 수직 효과를 강조하였다


 

보문교회는 개신교 건물임에도 정면 모습은 웅장한 유럽 성을 연상케 하는 화려함이 돋보인다. 유럽 중세기 건축의 전형적인 고딕식으로 건물 전체를 붉은 벽돌로 짓고 하늘 높이 탑신부와 십자가를 설치하여 수직 효과를 강조하였다. 보문교회를 보면서 오늘날 힘을 읽어버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교회가 그 사명을 다하고 있기에 이 사회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보문교회를 뒤로하고 구 충남도청사 옆에 있는 원불교대전교당으로 향한다. 원불교대전교당 앞에 서니 먼저 소태산 마음학교라는 간판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 밑으로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다.

 

 

 

*원불교 대전 교당

 


 

*원불교 대전교당 안의 작은 까페에는 차 향이 가득했다.

 

한 마음이 선하면 모든 선이 이에 따라 일어나고,

한 마음이 약하면 모든 악이 이에 따라 일어나니,

그러므로 마음은 모든 선악의 근본이 되나 니라.


선을 행하고도 남이 몰라주는 것을 원망하면 선 가운데 악의 움이 자라나고,

악을 범하고도 참회를 하면 악 가운데 선의 움이 자라나나니,

그러므로 한 때의 선으로 자만자족하여

향상을 막지 말며, 한때의 악으로 자포자기하여

타락하지 말 것이니라.


원불교는 두산백과에서 1916년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이 창시한 한국의 신 불교로 일원상의 진리와 함께 불교의 생활화, 대중화, 시대화를 추구하는 종교라 돼있다. 교당안의 작은 카페에 들어가니 커피향이 그득하다. 원불교 교도들은 마음을 다스려 매사에 감사한 생활을 실천 한다며 커피 한잔을 건네주신다. 좋은 말씀과 함께 커피 향을 뒤로 하고 구 충남도청사로 발길을 옮긴다.

 

 

*천만관객을 돌파한 영화 변호인 촬영지, 빨갱이 변호사라며 주인공을 향해 피켓 시위와 계랸을 투척하는 곳 

 

 

*영화 변호인 주인공 송우석이 친구 기자와 만나는 곳


 

구 충남도청사는 역사적 건축사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건물이지만 우리에게는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변호인 촬영지로 더 기억이 남는 곳이다. 먼저 공판이 시작되는 법원을 비추는 것이 구 충남도청사 정문이다. 빨갱이 변호사라며 법원으로 들어가는 송우석을 향해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계란을 투척하는 장면이 정문 쪽이고 2층으로 향한 계단은 주인공 송우석이 친구 기자와 만나는 곳이다. 백 없고 배경 없는 세무 변호사 송우석(송강호)이 무자비한 권력의 남용으로 인해 인권 변호사로 새롭게 변신해 가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역어가는 영화 변호인, 국밥 집 아들 박진우를 고문한 차경감을 향해 국가란 무엇인지 열변을 토 하는 장면에서 가슴 시원한 감동의 눈물이 저절로 나오게 만드는 대사가 있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권력이 누구를 바라보고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해야 하는지를 대변하는 말이다. 지금은 구 충남도청사는 대전근현대사진전시관과 대전시민대학으로 활용되고 있다. 영화 변호인을 촬영한 구 충남도청사에서 그 감동적인 장면들을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가 싶다.


 

성심당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는 대흥동 성당은 얼마 전 역사적, 종교 건축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등록문화재 제643호로 지정되었다. 1962년 건물 완공 당시 지금의 원 도심에서는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두 손을 합장하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건물로 그 당시 성당 건물로는 파격적인 건물로 평가를 받았다. 파격적인 내용은 고딕 양식이 아닌 모더니즘 성당 건축 이고, 거대한 성당 내부를 기둥 없이 구성한 철근콘크리트 구조, 절판 구조의 캔틸레버 캐노피에 의한 정면 주 출입구 디자인 등이다.

 

 

*등록문화재 제643호로 지정된 대흥동 성당

 

 

 

*고딕 양식이 아닌 모더니즘 건축이 돋보이는 대흥동 성당

 

 

*절판 구조의 캔틸레버 캐노피 디자인 이 아름다운 대흥동 성당 입구


 

대흥동 성당을 바라보자니 지난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 하였던 장면이 떠오른다. 4박5일 동안 낮은 자세로 가장 소외된 이웃을 어루만지며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모습이었다. 그 장면들은 마음속의 긴 여운과 깊은 울림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참 종교인이 모습을 그려보며 목척교로 향한다.


 

원도심의 중심을 연결해주는 다리로 대전의 역사와 같이한 곳으로 숱한 애환이 담겨 있는 곳이다. 또한 1960년 학생 수 천명이 이승만 독재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 데모한 4.19 혁명 성지이기도 한곳이다. 옛 추억의 건물이었던 홍명상가와 중앙데파트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지금은 새롭게 변신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다리다. 동쪽을 바라보면 대전역이 보인다.

 

 

*원도심의 중심을 연결해주는 목척교

 

 

*목척교는 부정 선거에 항의 데모한 4.19 혁명 성지이기도 한곳이다.


 

대전역은 대전 역사의 중심에 서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대전역은 1905년에 개통되었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 자원 수탈과 대륙 침략의 통로로 한국전쟁 당시에는 피난로로 그 역사만큼이나 아픔이 많았던 곳이다. 그리고 대전의 근대발전의 역할을 철도를 통해서 톡톡히 해낸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히 추억을 만들어 가고 있는 대전역 동 광장을 나와 대동천 따라 인동 도깨비시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대전역 서 광장

 

 

*대전역 동 광장


 

인동 도깨비시장의 제1치수교 앞의 골목으로 올라가면 천도교 대전교구가 나온다. 두산백과 에서는 조선 후기 1860년에 최제우를 교조로 하는 동학을 1905년 제3대 교주 손병희가 천도교로 개칭한 종교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동학과 천도교하면 동학농민운동과 최제우 최시형 그리고 녹두 전봉준 장군 마지막으로 3.1만세운동의 33인의 대표가 된 손병희가 생각나는 종교다. 천도교의 중심 사상은 인내천(人乃天)으로 사람이 곧 하늘이다. 즉 사람 대하기를 늘 하늘과 같이 하라는 사상이다. 천도교 대전교구가 있는 막다른 골목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을 대할때 얼마만큼 정성을 다하여 대하였는지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며 대전성지순례길을 마친다.

 

 

*2개의 교회와 1개의 불교 건물이 이채롭다.


 


 

*인동에 있는 천도교 대전교구



*천도교 대전교구가 있는 골목에서 대전성지 순례길은 끝난다.

 

감히 제목을 성지순례길이라 명명 한 것은 각자의 교인들은 절대자를 모신 각 교회나 성당, 교당, 교구가 모두 성전이기 때문이다. 우리사회가 빨라지고 편해지고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비우고 나누기 보다는 더 채우고 움켜줘야 한다고 학습하는 사회는 아닌지, 뒤돌아서 잠시 멈추고 역사와 종교가 살아 숨 쉬는 길에서 절대자가 지향하는 뜻을 되새겨 나를 깨우치는 원도심 길이 되길 바라며 발걸음을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