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계3구간(닭재~늘남이고개)
산행일자---2005년5월1일,일요일,흐림
산행시간---6시간10분 (휴식점심시간 1시간10분,알바 40분 포함하지 않음)
산행거리---도상거리 15km
산행인원---부소림,김영재,느낌표,문병환 이상4명
이번 3구간 산행은 대전문단의 거목시인 정훈님의 대표작 "머들령"이 무대가 되었던 고개를 실지로 볼 수 있으며,정기봉이 사실은지봉산이 아닌지 자료을 통해 생각해보고 아울러 3천원의 건설비로 개통이 된 태봉재도 직접 건너볼 수 있는 좋은 산행구간이다.
비가 온다는 예보와는 달리 비가 오지 않아 다행인데 흐린날씨에다 5월초의 날씨치고 넘 후덥지근하다.승강장에는 부소림님과 김영재님이 벌써 와있고 뒤이어 문대장님이 도착 뫼꿈이 회장님이 준비해준 대전시계 지도를 건네 받고 마전행 버스에 오른다.
닭재입구 덕산말에 도착하니 전달과는 너무나도 푸른 산하 모습에 세월의 빠름을 피부로 느끼며 참으로 부지런한 자연이 경외스럽기 까지 하다.
삼괴동 덕산말
옛 덕산말 사람들이 애환이 담겨진 금바위
옛 덕산말 사람들이 애환이 담겨진 금바위를 지나 마을에 경사가 생기면 닭우는 소리가 들리고 흉사가 있으면 소나무가 울었다는 닭재에는 거목의 느티나무와 2개의 돌탑이 운치를 더해주어 재를 넘던 길손들은 꼭 쉬었다 가씀직하다.
닭재
후덕지근 한 날씨덕에 이마에선 전신 땀이 흐르고 김영재님이 종주한 보.만식.계가 화두로 이어진다.닭재에서 지원해준분들의 고마움을 절실히 느꼈단다.
연초록의 싱그러운 등로를 따라 봉화대터(국사봉)을 넘어 내려가노라면 소나무와 사방오리나무가지가 붙어 자라는 모습이 이채롭다.
머들령 가지전 보
머들령에서 바라본 마달촌
정감어린 머들령
1시간40여분 걸음에 등짐장수 쉬어가고,도둑들의 길목지로, 권세높은 원님도 내려서 넘던 머들령에 도착한다.겨우 한필의 말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고개는 말없이 우리들을 반겨주고 있다.
준비해간 자료로 부소림님이 머들령에서 "머들령"의 시를 낭독한다.
머들령ㅡ정훈(丁薰)
요강원을 지나
머들령
옛날 이 길로 원님이 나리고
등심장사가 쉬어 넘고
도둑이 목 축이던 곳
분홍 두루막에
남빛 돌띠 두르고
할아버지와 이 재를 넘었다.
뻐꾸기 자꾸 우던 날
감장 개명화에 발이 부르트고
파랑 갑사댕기
손에 감고 울었더니
흘러간 서른 핸데
유월 하늘에 슬픔이 어린다.
정훈(丁薰)-대전 문단의 거목일 뿐만이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진 시인으로 1911년 논산시 양촌면 태생이다.그의 시집으로는 머들령,파적,피맺힌年輪,거목,꽃시첩등이 있으며 1945년에는 메마른 대전의 시단에 동백시회를 주도하며 대전에 현대시의 뿌리를 심은 시인이다
고운한복에 깜장고무신을 신은 꼬마가 할아버지 손에 끌려 얼마나 높은 고개인지 발이 부르터,울면서 넘었던 옛시절의 그리움이 애잔하게 가슴에 저미어 온다.
그리고 이 머들령은 1946년 당시 일본인 금산 우체국장이 조선인들 고혈을 짠 돈이든 우편베낭을 메고 넘다 의병들에 의해 피살되었던 현장이기도 하다.'
머들령 지나서
머들령을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성벽에 쌓여져 있어 중요했던 고개임을 알 수가 있다.머들령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일어선다.
가파른 경사지를 올라 조망지에 도착하니 대진고속도로 옆으로 장산저수지가 그림같이 펼쳐지고 고개를 왼편으로 돌리면 삼괴동 덕산말이 식장산 줄기 품안에 안겨있는 듯 하다.
정산 저수지
골냄이 고개을 지나 가파르게 올라 정기봉에 도착한다.마침 점심을 먹고 있는 일행이 있어 반갑게 인사를 한다.지도상의 지봉산을 갖고 의견을 나눈다.정기봉이 지봉산이 아닌가 하는 자료를 잠시 소개을 한다.
지봉산(止鳳山)-하소동과 금산군의 경계에 위치한다. 만인산 동쪽에 있는 산 이름으로 만인산의 한줄기이다.산의 형세가 마치 자봉(자색의 봉황)같이 빼어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는 옛날 봉황새가 울어서 지나가는 행인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는 전설에 따라 산의 이름을 지봉산이라 했다고 한다.(대전향토사료관)
태모신날-하소동 지봉산 정상을 태모신날이라고 부른다.태조 이성계의 태를 묻은 태봉재가 있는 산이 있는 주산이라 해서 그리 부른다.(동구 문화원-동구의 산하에서)
정기봉 정상에서 대전시계 지도
정기봉에서 뫼꿈이 회장님이 준비해준 대전시계 지도를 갖고 단체 기념 촬영을 한다.고향이 대전이 아니면서도 내가 살고 있는 주변의 조그마한 산들도 소홀히 하지 않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보~만길을 처음으로 개척하지 않았나 싶다.
태조대왕태실
정기봉을 출발 경사지를 내려와 태봉재가 있는 태실 벤취 에서 점심을 먹는다.잠시 빗방울이 떨어지다 금새 그친다.문대장님의 상추쌈이 일품이다.
점심을 먹고 김영재님은 만인산 휴게소에 들려 물을 받아 만인산 정상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지고 일행들은 태봉재의 외줄을 건넌다.
태봉재
이 태봉재의 건설비용이 3천원이 들었단다.전라북도에서 200원을 투자하고 대전시에서 1300원 그 나머지는 충청남도 예산으로 건설하였다는 이고개는 1950년대까지만 해도 눈이오고나 큰비가 오면 자동차가 넘어 다니지 못하는 고개로 공주의 한티고개,청양의 대테고개,공주 유구의 차양고개와 함께 불통의 고개로 알려졌었단다.
태봉재을 건너 만인산 정상에 도착하니 김영재님이 벌써 와 있다.이 만인산은 대전의 삼대하천중 하나인 대전천의 발원지이다.대전천의 발원지 하면 만인산 봉수레미골의 봉수샘이라 하는데 봉수샘은 장마로 인해 없어졌다.
공사중인 먹치
만인산,아침일찍 올라와 정상에서 서편을 바라보면 만개의 봉우리가 겹쳐 마치 연꽃의 바다를 연상케 하는 장면을 봐야 만인산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만인산을 출발 공사가 한창진행중인 먹치를 지나 가파르게 경사지를 치고 올라 가면 보문산 갈림길에 도착한다.
보문산 갈림길 오름길에서 바라본 만인산
잠시 휴식을 취하고 보문산길과 헤어져 왼편경사지를 내려간다.안부를 지나 무명봉을 지나 내려가는중 표시기 있어 무심코 지나치는 바람에 시계를 놓쳐 40여분 알바를 한다.마지막 표시기 까지 되돌아오니 시계가 눈에 들어온다.
아름다운 어남동
어남동의 채석장을 기준삼아 시계 마루금을 따라 마지막 날머리인 늘남이재에 도착 산행을 마감한다.
늘남이재에는 부소림의 부탁으로 친구분이 시원한 맥주을 준비해 갖고와 기다리고 있다.산행을 마치고 마시는 시원한 맥주맛은 먹어본 사람만이 알뿐이다.산성동 까지 고맙게도 승용차로 편안하게 올 수가 있었다.택시를 타고 둔산으로와 칼국수 집에서 간단한 뒤풀이를 하고 다음 4구간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감사합니다.
3구간 마지막 지점 늘남이재
싱그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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