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대전 여행 둘레길

진산성지 순례길

느낌표!! 2014. 9. 1. 23:58

 

“만약에 제가 살아서건 죽어서건 가장 높으신 아버지를 배반하게 된다면 제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한재권 성인과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 권상연 의 발자취를 찾아서

 

대전의 아름다운 길 (진산성지 순례길)

 

 

◇진산성지 순례길

 

*코스:원장안/상산막/수양원/남극점/갈림길/묘지능선길/진산성지성당
*위치:대전서구 장안로 461, 충남 진산면 지방리

*거리:6.5km

*시간: 3시간

*교통편: 가는길 버스(22번) 오는길 금산버스 로 신대리와 진산으로 나가 대전행 버스(34번)

 

 

지난 8월14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 하였다. 4박5일 동안 긴 여운과 깊은 울림을 남기고 18일 출국 하였다. 방한 내내 그가 보여준 진정성과 낮은 자세로 가장 소외된 이웃을 어루만지며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준 모습에 온 국민이 열광하였다.

 

그의 첫 미사로 “용서 받고 싶은 그 마음으로 상대를 용서하라”를 시작으로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평화와 화해를 위하여 정직한 기도를 바칠 수 있겠느냐”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도 용서하라” 등의 말에서 종교를 떠나서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뒤돌아보는 성찰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에 대한 시복식이 있었다.  시복식은 천주교에서 성덕이 높은 이가 선종하면 일정한 심사를 거쳐 성인(聖人)의 전 단계인 복자(福者)로 추대하는 행사를 말한다. 바티칸 교황청에서 시복을 담당하는 추기경이 집전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 같이 교황이 순교자의 나라를 찾아 시복식을 직접 집전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고 특별한 일이라고 한다. 그 복자로 추대된 윤지충 바오로가 우리 대전의 바로 이웃인 진산성당에 기념비가 있다. 그 분을 만나러 가는 길이 있으니 천주교 유성성당에서는 “최초의 증거자를 만나는 길”이라 했으나 필자는 “진산성지 순례길”이라 명하고 싶다.

 

 

장안동의 윗 마을에 해당되는 상산막, 대부분 성지순례길을 이곳에서 시작한다.

 

진산성지 순례길 은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보다 명상(暝想)의 길로 대전의 장안동에서 금산의 지방리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진산성지 순례길 출발점 장안동은 원장안 하산막 상산막 재골 원골 마을로 이루어 졌는데 매노천의 발원지로 이어지는 작은 냇가를 따라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대부분 버스종점인 상산막에서 출발하는데 예쁜 마을길을 걷고 싶어 원장안 부터 출발한다. 원장안은 장태산 휴양림 입구로 유명하지만 휴양림 이후부터는 산이 막혀 마을이 없을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작은 시냇물 따라 올라가면 골짜기 따라 끝없이 마을길이 이어진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발걸음 옮길 때마다 앞을 가로막는 산줄기가 자꾸 뒤로 밀려가는 것이다. 굽이돌아 가면 다시 예쁜 마을길이 나타고 그렇게 산 아래까지 이어진다.

 

 

대전교구 60주년 에 맞춰 한재권 성인이 걸었던 그 길 따라 후대 천주인들이 걸었다는 표지기가 많이 낡았다.

 

이런 장안동에서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한재권이 나고 자랐다. 그 당시 천주를 믿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내놓은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시작되자 한재권도 어쩔 수 없이 남쪽 산을 넘어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성동 신리로 피신을 하게 된다. 그 옛날 한재권이 넘었던 그 산길을 따라가는 것이니 어찌 눈을 감고 차분한 마음으로 깊은 생각을 아니 할 수 있겠는가. 가파른 경사지를 오르면 능선 길로 대전의 최남단에 해당되는 곳으로 대전광역시 극남점이라는 빗돌이 말없이 서 있다.

 

 

대전의 최 남단 지점이라는 빗돌

 

안타깝게도 1866년 12월 5일 그는 포졸들에게 잡혀 전주 감영으로 압송되고 1866년 12월 13일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참수형을 당하니 그의 나이 한창 젊은 31세였다. 다행이 그의 성덕이 빛을 발하여 1968년 10월 6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되고, 1984년 5월 6일 역대 교황 중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순교자 시성식을 거행하면서 한국 천주교 103위성인 중 한분으로 탄생된다.

 

 

 

진산 성당이 있는 지방리 모습이 아늑하다.

 

극남점 빗돌을 뒤로하면 진산성당이 있는 지방리 마을 모습이 아늑하게 보이는 조망 지가 나오고 조금 더 가면 대전 산줄기에서 금산 산줄기로 넘어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그 갈림길에는 유성성당에서 매어놓은 진산 성지 가는 길이란 커다란 표지기가 반갑게 반긴다. 목민심서로 유명한 정약용 선생이 서학이란 이름으로 천주학을 받아들이고, 이승훈이라는 분이 북경에 연행사 사절을 따라가 그곳에서 세례를 받아 오면서 한국 천주교의 역사가 시작되었는데 이러게 자발적인 받아드림 현상은 세계 천주교의 역사에서도 드문 일이라고 한다.

 

 

유성성당에서 매어놓은  진산성지 가는길 표지기

 

표지기 따라 에둘러 가는 산길이 예쁘기만 하여 발길이 저절로 옮겨진다. 그 당시 한재권 성인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이 산길을 넘었을까? 또 다시 갈림길이 나오면 “최초 증거자 윤지충, 권상연 을 만나는 진산성지 가는 길”이란 현수막이 갈림길을 안내해 주고 있다. 현수막을 지나면 내리막길이 이어지고 끝 지점에 도착하면 묘지능선이 펼쳐진다. 앞을 보면 드디어 진산성당이 보인다.

 

 

진산 성지 가는 길 임을 알려주는 현수막, 유성성당에서 설치 하였다.

 

피로써 신앙을 지킨 이들을 순교자라 하는데 한국 천주교 역사상 순교자 시복식이 열린 것은 모두 세 번째라고 한다. 첫 번째는 일제 강점기인 1925년, 두 번째는 1968년 바티칸 공의회 직후인데 두 번 모두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렸다고 한다. 지난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한 시복식이 세 번째라고 하는데 한국에서 시복식이 열리는 것도 천주교 역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묘지능선에서 바라본 진산성지성당(통신탑옆 하얀건물)

 

묘지능선을 내려오면 지방리로 진산으로 이어지는 도로와 맞닿아 있다. 지방 천 건너 5분 거리에 오늘의 목적지 진산 성당에 닿는다. 한재권 성인도 이 길을 따라 진산을 지나고 대둔산 길을 넘어 완주로 갔을 것이다. 성당 입구에는 천주교 대전교구 진산성지성당 이라는 간판이 가슴 설레게 만든다. 종교적인 유적이 남아 있는 성당이라는 것에서 옷매무새가 가다듬어 지고 경건한 마음이 든다. 먼저 느끼는 감정은 성당이 작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보아온 종교시설은 모두 뒤질세라 크고 거대한 웅장함 자랑을 제일로 치는데 이곳은 소박하고 작다는 것에서 더 귀하고 존경해 보인다.

 

 

진산성지성당 입구, 두분의 순교자 빗돌이 있다.

 

 

진산성지성당

 

 

진산성지성당 옆모습

 

 

진산성지성당

 

 

소박하고 작다는 것에서 더 귀하고 존경해 보이는 진산성지성당

 

미사가 끝나고 모두 돌라간 터이라 성당이 한적하기가 그지없다. 작은 성당 옆으로 두 개의 빗돌이 있는데 오늘 만나보고자 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 권상연이시다.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 기념비

 

윤지충 (1759~1791)

 

윤지충은 1759년 진산 에서 태어났다. 고종 사촌 정약용 형제를 통해 천주교 신앙에 대해 알게 되고 1787년 인척인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를 받게 된다. 1790년 북경의 구베아주교가 조선 교회에 제사 금지령을 내리자 집안에 있던 신주를 불살랐다. 이로 인해 체포되어 “천주를 큰 부모로 삼았으니, 천주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는 결코 그분을 흠숭하는 뜻이 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제가 살아서건 죽어서건 가장 높으신 아버지를 배반하게 된다면 제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라는 말을 남기고 순교하니, 그때가 1791년 12월 8일로당시 그의 나이는 33세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 권상연 야보고 기념비

 

권상연 (1751~1791)

 

고종 사촌 동생인 윤지충으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운 뒤에 천주교 신앙을 받아 들여 입교 하였다. 1790년 조선 교회에 제사 금지령을 내리자 집안에 있던 신주를 불살랐다. 권상연도 “예수 마리아”의 거룩한 이름을 부르면서 윤지충과 함께 칼날을 받았으니, 때는 1791년 12월 8일로 당시 그의 나이 41세였다.

 

신분사회의 사슬을 끊고 신앙 안에서 인간 존엄과 평등, 이웃사랑의 정신을 실천한 참 종교 인 이었다. 그리하여 1791년부터 1888년의 박해 때 까지 순교한 122위 분과 함께 2014년 8월 16일 서울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한 시복식에서 복자의 반열에 올랐다. 진상성지성당이 또 한 번의 역사가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이곳에서 마무리 되는 진산성지 순례길 은 2013년 12월 (사)문화유산울림 안여종 대표의 안내로 답사가 있었다. 그러던 중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으로 인해 다시금 찾게 되었다. 필자야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한재권 성인과 윤지충, 권상연 두 분의 복자가 남긴 가르침과 교훈을 되새겨 볼 수 있었던 진정 아름다운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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